[좌담회] '수출입은행의 어제, 오늘과 내일' .. 창립 20주년
입력
수정
======================================================================= 수출입은행이 1일로 성년을 맞았다. 수출입은행은 지난 20년동안 수출산업을 위한 자금공급창구 역할을 충실히수행, 수출산업 육성과 국내산업구조 고도화를 이끌어내는 주역을 맡아왔다. 우리나라가 만년 자본도입국에서 벗어나 자본재 수출국으로 탈바꿈하는데도수출입은행의 자금지원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한국경제신문은 수출입은행 창립20주년을 맞아 재계및 학계의 인사를 초청,수출입은행의 국가경제 기여성과를 평가하고 향후 수출구조 변화에 따른 수출입은행의 진로를 모색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수은의 어제, 오늘과 내일"이란 주제로 열린 이번 좌담회엔 윤원석대우중공업회장 김병진 대림엔지니어링회장 정창영 연세대경영대학원장 문헌상 수출입은행장 변도은 본사주필(사회)이 참석했다. >======================================================================= 사회 =수출입은행이 창립 20주년을 맞았습니다. 그동안 수출입은행은 우리나라 수출및 산업구조 고도화와 우리기업의 세계화 추진에 선도자의 역할을 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먼저 은행장께서 지난 20년간의 수출입은행 업적에 대해 자평을 해주시죠. 문행장 =수출입은행은 정부의 중화학공업 육성시책에 따라 자본재 수출의 진흥과 해외투자 촉진, 주요자원의 안정적 확보, 대외경제협력의 증진을 목적으로 출발했습니다. 지난 20년동안 1백7개국에 약2백50억달러의 금융을 지원했는데 이 가운데 수출자금이 87%, 해외투자자금이 7%, 수입자금이 6%를 차지했습니다. 자금공급규모를 보면 설립 당시 5백억원에 불과하던 것이 95년에는 4조원으로 확대됐습니다. 자금지원구조도 달라져 선박 중심에서 수출금융이 90년대엔 플랜트와 기계류 중심으로 전환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자본재산업이 폭넓게 성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정교수 =수출입은행의 설립이 갖는 의미는 무엇보다도 개발도상국으로서는 최초로 중장기 연불수출금융을 전담하는 공적 수출금융기구를 설립했다는데 있습니다. 일방적인 자본도입국의 위치에서 탈피해 자본재 수출과 해외투자를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대외경제협력을 확대해 나갈수 있는 자금지원 창구를 마련했다는 점이지요. 지난 20년동안 거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우리나라의 중화학공업이 조선산업을 기점으로 자동차 반도체 고도의 기술집약적인 플랜트산업에 이르기까지 오늘과 같이 성장하게 된 이면에는 수출입은행의 적극적인 금융지원이 있었다는 사실을 빼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윤회장 =조선산업에 관여해온 사람으로서 돌이켜보건대 우리나라 조선산업 발전은 수출입은행의 선박수출금융이 없었다면 거의 불가능했다고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76년이래 수출입은행의 집중적인 선박수출 지원은 우리나라 조선산업이 70년대후반 세계 조선시장의 장기 불황속에서도 오히려 세계 조선대국으로 부상하는데 큰 힘이 됐습니다. 이러한 성과가 가능했던 것은 당시 일본과 유럽의 선진 조선국들이 불황을극복하기 위해 조선소의 통합및 폐쇄조치 등 시설규모를 축소하는 방향으로대응한 반면 우리나라는 수출입은행을 통한 연불수출금융의 적극 지원으로 조선산업의 수출전략산업화를 추진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회 =플랜트 수출에 대한 지원은 그 다음에 이뤄졌죠. 김회장 =연불수출금융 업무를 외환은행이 담당하던 시절로 기억됩니다. 승리기계가 아프가니스탄에 섬유플랜트(직기) 1백55대를 수출했는데 여기에나간 연불수출 자금지원이 첫 플랜트수출 지원이 아니었던가 생각됩니다. 플랜트산업은 기술능력과 함께 장기간에 걸쳐 대규모자본이 요구되는 분야이기 때문에 연불수출금융의 지원이 절실히 요구되는 산업분야입니다. 국내시장규모가 제한적인 여건에서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생산규모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해외마케팅을 통한 수출만이 유일한 살 길입니다. 국산플랜트의 주된 수출시장인 개도국의 경우 장기저리의 연불금융이 없으면 해외수입자들이 구매력을 갖출수 없지요. 사회 =일반 상업금융기관의 업무영역과 기능이 확충되고 있는 한편으로일부 특수은행의 민영화와 정책금융의 축소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또 국내 대기업들도 독자적인 자금조달 능력이 크게 향상되고 있습니다. 이같은 상황에서 수출입은행은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고 할수 있는데요. 정교수 =상업금융기관의 업무영역이 확대됨에 따라 현재 수출입은행이 맡고 있는 제작자금지원 등 일부 기능을 떠맡을 수는 있겠지요. 하지만 항공기 통신 원자력발전분야 등 여전히 일반 상업금융기관이 감당하기 어려운 분야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국내외 자금조달에 있어서도 상업금융기관의 경우 비용이 많이 들고 단기자금이 많아 대외적으로 경쟁력 있는 금융조건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또 대규모 자본재 수출에 따른 위험 부담에도 한계가 있고 장기대출에도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앞으로 진출해야 할 개발도상국에 대한 자본재 수출을 효율적으로 지원하기 위해서는 수출입은행의 존재는 필수적이라고 봅니다. 대외관계측면에서도 수출입은행의 금융지원은 수입국의 외환부족문제 해결, 교역상대국과의 무역마찰 완화, 경제개발촉진등 경제협력 차원의 효과와 효율적인 무역정책을 위한 전략적 대응수단으로서 의의가 크다고할 수 있습니다. 김회장 =최근 WTO(세계무역기구)체제가 출범함에 따라 보조금 성격의 수출지원금융이 전면 규제되고 있습니다. 대내적으로는 금리자유화를 비롯한 금융자율화와 정책금융의 축소로 인해 과거와 같은 금융지원을 통한 수출 촉진은 점점 어려워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불수출금융은 WTO체제 아래서도 허용되는 유일한 수출지원금융이기 때문에 우리기업의 수출경쟁력 강화를 위해 지속적으로 기능을 확대할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이 금융시장의 발전정도가 불충분해 국내 금리수준이 높고 장기자금의 차입이 어려운 여건에서는 연불수출금융제공 자체가 보조금적 역할을 하게 되지요. 사회 =수요에 비해 자금이 부족하지는 않습니까. 문행장 =예금을 받지 않는 금융기관이다보니 주로 재정자금에 의존하고있습니다. 외국의 수출입은행들은 이 비중이 80%~90%에 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경우 재정자금 비중은 25%정도이고 나머지는 한국은행의 외환보유고를 활용하거나 외국으로부터의 차입으로 메웁니다. 국가 신용등급으로 인정받고 있기 때문에 저리 차입이 이뤄지고 있고 올 차입계획도 16억달러로 잡혀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자금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예상돼 충분한 공급이 가능할지우려됩니다. 사회 =요즘 프로젝트 파이낸스가 유행처럼 돼있지 않습니까. 김회장 =예전엔 상대국 정부의 지불보증을 근거로 수출금융이 많이 지원됐습니다. 그러나 개도국은 디폴트(채무이행불능)사태가 나지 마라는 법이 없습니다. 오히려 사업타당성 있는 프로젝트가 더 안전할 수 있습니다. 프로젝트에서 나오는 대금을 에스크로어카운트(결제위탁계정)로 넣기만 하면 바로 결제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업성에 근거를 둔 금융을 보다 많이 취급하는게 좋다고 봅니다. 개도국 사업이더라도 경쟁상대방은 선진국 업체이기 때문에 업체와 은행의공동노력이 필요합니다. 사회 =윤회장께선 평소에 구매자 신용을 많이 강조하셨죠. 윤회장 =현재는 대부분 국내 수출업체를 거쳐 수입자에게 자금이 지원되는 공급자신용방식으로 수출금융이 운용되고 있습니다. 공급자에 회수책임이 있는 금융이다보니 은행은 안전을 확보할 수 있지만 상업성은 미흡한 감이 없지 않습니다. 또 담보도 정해진 담보만 취급하게 돼있어 수출입은행도 어려운 입장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담보를 다양하게 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하는게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플랜트는 대부분 발주자가 후진국이어서 담보력에 문제가 있을 수 있지만 선박은 오히려 선진국이 많습니다. 구매자신용의 확대가 가능한 것이죠. 사회 =중소기업의 해외투자를 수출입은행이 적극 지원해야 한다는 지적도 많습니다만. 정교수 =대기업들은 해외금융시장에서 위상이 높아져서 자체적으로 파이낸스하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자금공급규모가 제한돼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면 중소기업에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해외투자 내용면에서 볼 때도 중소기업의 업체수가 훨씬 많습니다. 중소기업의 해외진출을 도와주는 것은 결과적으로 자본재 수출을 지원하는것이나 다름없습니다. 특히 오늘날 세계시장은 "자본재 수출전쟁"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치열한 경쟁속에 있습니다. 다른 나라들의 수출신용기관 역시 자국기업의 자본재 수출 증진을 위해 금융 등 유.무형의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습니다. 사회 =수출입은행은 정부로부터 위탁을 받아 대외경제협력기금(EDCF)과남북경협기금을 운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EDCF의 경우 경제외교수단으로서도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고 남북협력기금은 통일기금의 비축이란 측면에서도 중요성이 높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점에 대해서도 말씀해주시죠. 문행장 =EDCF의 경우 현재 자금 조성액이 약 8천억원, 지원규모가 약 4천억원 정도 됩니다만 95년기준으로 GDP(국내총생산)의 0.0 3% 정도로 지원실적이 미미한 수준입니다. 우리나라 경제규모가 커짐에 따라 우리나라가 부담해야 할 원조규모도 증가할 것이기 때문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남북협력기금의 경우에도 유비무환의 자세로 기금조성과 지원체제를 착실히 구축해갈 것입니다. 김회장 =프로젝트파이낸스와 플랜트수출을 하다보니 영업비용이 많이 듭니다. 사업타당성 조사단계에서 EDCF자금이 사용될 수 있다면 기술정보 획득 등 다음단계의 일하는데 유리한 점이 많을 것입니다. 그간에는 EDCF가 인프라나 환경문제 등에 주로 관련돼 있었지만 앞으로프로젝트의 수주와 연계돼 지원됐으면 좋겠습니다. 윤회장 =규정상 EDCF자금을 공여할 수 있는 대상이 경제개발프로젝트 등으로 제한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리문제만 하더라도 일본의 EDCF보다 비싼 편입니다. 어차피 "바이코리아"가 목적이라면 절차 등을 간소화해 플랜트수출 등에서초기비용이 구조적으로 많이 드는 점을 해결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사회 =수출입은행은 공적 수출신용기관으로서 수출금융뿐만 아니라 해외투자금융 수입금융 등의 여신업무도 취급하고 있습니다. 대내외 환경변화에 대응해 여신정책은 어떻게 정립할 계획입니까. 문행장 =지금까지는 우리기업의 대외거래에 필요한 금융의 가용성을 확대한다는 측면에서 양적발전(규모확대)에 치중해온게 사실입니다. 이제부터는 이러한 금융의 양적 증대와 더불어 명실공히 세계적 공적 수출신용기관(ECA)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여신의 질적 측면에서의 개선에 노력할 계획입니다. 즉 개발도상국의 정치적 위험까지도 감안해 수출자의 수출대금 회수에 따르는 위험을 적극 수용하는 자세로 제도를 개선하고 수입자앞 직접대출과보증제도의 활성화를 추진해 나갈 생각입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