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뮤지컬 '레미제라블', 한국팬에 진한 감동 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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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공연중인 "레미제라블" (원작 빅토르 위고, 연출 마틴 맥컬럼)은 "세계를 울린 뮤지컬"이라는 명성이 과장된 것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아시아투어를 위해 별도로 구성된 "순회 공연팀"의 수준을 의심하는 일부의 우려를 불식시키듯 카메론 매킨토시사는 영국 웨스트엔드나 미국 브로드웨이 무대와 비교해도 손색없는 "문화상품"을 한국관객에게 선보였다. 일반적인 뮤지컬과 달리 대사없이 노래만으로 진행된 공연은 치밀한 무대연출, 배우들의 높은 기량, 16명으로 구성된 오키스트러의 살아있는 음악이 3시간30분동안 거의 완벽하게 어우러졌다. "레미제라블"은 또 19세기초 프랑스의 암울했던 시대적.사회적 상황이 빚어낸 다양한 인물상과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는 민중의 모습을 통해자유 평등 박애라는 보편적인 메시지를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회전무대를 이용한 오차 없이 신속한 무대전환과 깊이있는 공간구성은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었다. 표현주의영화기법을 연상시키는 다소 어두운 조명은 작품의 배경인 당시의 암울한 상황을 효과적으로 전달했다. 빡빡한 공연 일정으로 지쳤을 법한데도 32명의 출연배우 모두 열정적인 연기를 보여주고 있는 것도 놀라운 대목. 특히 장발장의 숙적인 자베르형사역의 리처드 킨제이는 풍부한 성량과 강인한 연기로 무대를 압도했고 짝사랑하는 마리우스를 코제트에게 인도하는 순정파여인 에포닌역의 마엔 디오니시오는 맑은 음색과 가냘픈 모습으로 관객의 시선을 한몸에 받았다. 6월27일 막을 올려 28일까지 한달이상 공연될 "레미제라블"의 흥행이과연 얼마만큼 성공을 거둘 지는 아직까지 미지수. 자막이 있기는 하지만 공연 전체가 영어로 진행되는데다 시대배경도 오늘날과는 차이가 있고, 분위기도 밝고 화려한 뮤지컬에 익숙한 국내관객에게는 어둡고 우울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가하면 이처럼 막대한 자본이 투입된 수준높은 수입뮤지컬의 장기공연은 국내 창작뮤지컬을 고사시킬 수도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일부에서는 이번 공연을 계기로 "해외뮤지컬 반대운동"을 펼친다는 계획을 세울 정도. 결국 눈이 높아진 관객들의 요구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가 앞으로 국내 뮤지컬계가 풀어야 할 당면과제라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