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정책이기주의

"재정경제원 때문에 일을 못 하겠다" 건설교통부 고위관계자는 3일밤 사석에서 기자들에게 최근 경제부처의 가장 큰 이슈인 SOC(사회간접자본) 확충방안에 관해 이같은 불만을 토로했다. 그간의 곡절은 이런 것이다. SOC확충방안은 관계부처간 협의를 마치고 15일 김영삼대통령에게 보고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최종안이 확정되지 않은 가운데 나웅배부총리가 지난 2일 느닺없이핵심 골자인 현금차관 도입 허용 방침을 발표했다. 장관들사이의 "엠바고"를 깬 셈이다. 건교부측이 다소 힘이빠졌을 것은 자명한 이치. 건교부도 행동에 들어갔다. 출입기자들의 요청에 따라 재경원과 업무협의가 끝나지 않은 자체 SOC확충대책을 내놓았다. 물론 확정발표시까지의 보도자제는 요청했다. 그러나 이미 일부상황이 보도된 상황에서 지켜지기 어려웠다. 언론의 대대적인 보도 배경을 두고 "고위층"이 분노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재경원도 신경질적인 반응이다. 현금차관 허용은 하반기 경제운용방안의 주요 실천방안인만큼 함께 발표하는게 정책의 실효성을 지닌다는 주장이다. 게다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을 위한 최종관문인 CMIT/CIME(자본이동및 국제투자위원회) 합동회의를 하루 앞두고 "자본시장 개방"의지를 보여줬다는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음을 건교부가 과연 알겠느냐고 강조한다. 발표시점이 당초 6월말에서 7월 중순으로 연기될 정도로 SOC확충대책을 두고 부처간 의견이 엇갈리는 부분이 적잖은 상황에서 건교부가 자신들의 "주장"을 언론을 통해 밀어붙이는 일종의 "외곽때리기"수법을 시도했다는 시각도 있다. 양부처의 수장인 나부총리와 추경석장관은 4일 오전 구본영 청와대수석과 함께 만나 긴급히 이 문제를 조율했다. "좀더 협의를 해보고 확정하자"는데 의견을 같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단 불거져나온 상처는 봉합된 셈이다. 그러나 두 경제부처의 "깜짝쇼"가 진행되는 동안 기업들은 혼란을 느낄수밖에 없었고 획기적으로 마련하겠다는 SOC정책은 표류하고 있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