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482) 제11부 벌은 벌을, 꽃은 꽃을 따르고 (6)

다른 사람들이 인사불성이 되도록 술에 취해 곯아떨어지자 유상련이 슬그머니 일어나서 설반에게 눈짓을 하고는 뇌대의 집을 나갔다. 유상련이 대문을 나서자 바깥에서 기다리고 있던 행노(행노)라는 시동이 말을 끌고 왔다. "행노야, 너 혼자 먼저 집으로 돌아가거라. 나는 성 밖으로 산보를 나갔다가 돌아가마. 말은 이리 내어놓고" 유상련이 행노에게서 말을 받아 올라 타고 북문으로 나아가 성문을 빠져나갔다. 거기 다리 위에서 말을 탄 채 설반을 기다렸다. 설반은 유상련이 나가고 곧바로 따라가면 혹시 누가 눈치를 챌 것 같아,북문 밖 다리에서 만나자던 유상련의 약속을 되새기며 술을 좀더 마시다가 자기 하인들도 따돌리고는 술자리를 빠져나왔다. 어떤 아름다운 여인을 만나러 갈 때보다 더욱 가슴이 뛰었다. "상련이 처음에는 나를 싫어하는 척하였으나 역시 나에게 마음이 있었던 거야" 설반의 입에서 흥얼흥얼 노래소리가 새어나왔다. 두여랑이 꿈속에서 유몽매를 보고 반했듯이 나는 오늘 저녁 유상련을 보고 반했네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유상련의 엉덩이가 보름달처럼 떠오르네 그렇게 설반이 들뜬 기분으로 말을 타고 끄덕끄덕 북문 밖 다리로 나아갔는데, 말이 다리를 지나가는데도 그것도 모른 채 콧노래만 불러대고 있었다. 유상련의 말 옆을 지나가면서도 눈에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지 설반은 덩실덩실 어깨춤까지 추며 제멋에 취해 있었다. 유상련이 자기를 스쳐 지나가는 설반을 부르려다가 하도 기가 차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리고는 고소를 머금은 채 천천히 설반의 뒤를 따라갔다. 저 사람이 어디까지 가서 정신을 차리려나. 다리를 다 지나 인가도 없는 산길로 접어들었는데도 설반은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고 있었다. 유상련은 설반이 한적한 곳으로 가면 갈수록 자기가 계획하고 있는 일을 치르기에 더욱 유리하다고 생각하며 묵묵히 뒤를 따라가기만 했다. 얼마를 더 갔을까. 주위가 나무숲으로 덮여 깜깜해지자 그제야 설반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두리번거리다가 뒤를 돌아다보았다. 유상련이 뒤에서 따라오는 것을 보고는 설반이 안도의 기색을 띠며 반색하였다. "어, 오늘 자네 집 별채로 간다고 했잖아.이 길이 거기로 가는 길인가" "그럼요. 저기 산속에 은밀하게 지어놓았죠. 누가 눈치 채면 안 되니까 여기서부터는 말을 나무에 묶어놓고 걸어서 갑시다" 둘은 근처 나무에 말을 묶어두고는 발소리를 죽여 더 깊은 산속으로 들어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7월 2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