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광직칼럼] '국성론'의 재음미 .. 논설위원

"우린 가장 행복한 때에 태어났다고 생각해요. 이 세상에 태어난 보람을 안고 죽을 수 있으니까. 우리는 우리의 새로운 역사를 꾸밀 수 있는 시대에 태어났단 말야.." 해방 직후의 사회상을 그린 소설 "삼년"의 작가 이무영은 주인공 태임의 입을 통해 당시 젊은 지식인들의 생각을 이렇게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의 이상적인 생각대로 역사는 굴러가 주지 않았다. 남북한 정부가 제각기 수립돼 나라는 두동강이 나고 6.25라는 모진 시련이 닥쳤다. 그 이후의 한국사는 자유와 번영, 그리고 근대화를 위한 시행착오의 연속이었다. 그 내막이야 어떻든간에 해방 51주년을 맞는 지금 한국의 변화는 놀랍다. 선진국의 문턱에 와 있는 한국인의 경제는 정도를 넘어 지나치게 사치스럽다. 이런 변화는 단지 물질적인 것에 그치지 않는다. 지적 교육적 학문적 문화적 수준도 도약적 발전을 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농업사회에서 산업사회로의 전환이 뒤늦은 나라의 공통적 비극이 역시 한국에서도 일어났다. "발전"이라는 개념을 "서양문물의 수입"이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써도 좋을 만큼 한국은 서양 의존적이었다. 서양문물을 받아들이면서 세상풍속과 인심이 놀랍게 많이 변했다. 먹고 입고 자고 말하고 배우는데 서양것이 파고들어가지 않은 곳이 없다. 싫든 좋든 한국인들의 사고나 의식도 이미 서양화되어 가고 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한국인 고유의 사고나 가치관은 점점 더 희미하게 퇴색해 간다. "사람이 육신은 살아 있다 하더라도 그 마음이 죽으면 그것은 사람이 아니다. 나라도 이와 같다. 국성이 쇠퇴하면 나라가 아닌 것이다" 1921년 선비 회봉 하겸진(1870~1946)은 서울에서 천리길인 진주 벽촌의 작은 서실에 들어 앉아 이렇게 "국가의 정신"의 중요성을 강조한 "국성론"을 써내려 갔다. 그것은 나라를 빼앗기고서도 정신을 못차리고 분별없이 새로운 서양문물 섭취에만 눈이 어두워져 있는 풍토를 지켜보면서 전통문화에 대한 자존의식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자각했던 유학자의 피맺힌 절규였다. 구한말의 거유 곽종석의 제자였던 회봉은 서양인을 짐승으로 여기는 척사위정론자는 아니었다. 유교의 폐단을 과감하게 지적할 줄도 알았으며 수많은 저술과 광범한 독서를 통해 서양철학과 역사에도 조예가 깊었다. 유림의 독립운동이었던 "제2차 유림단사건" 때는 8개월 동안 옥살이도 했다. "예의가 우리나라의 국성이라면 기술과 무력을 가지고 있는 서양과는 대적이 되지 않을 것이다. 예의는 우리가 그들보다 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능한 것을 닦지 않는다면 그것은 마치 코끼리가 호랑이같이 못 된 것을 부끄럽게 여겨 자기 이빨을 뽑는 것과 같고, 봉황새가 독수리 같이 못된 것을 두려워해 자기 깃을 뽑아버리는 것과도 같은 것이다" 회봉은 우리나라의 국성이 예의임을 강조하고 그것이 서양의 기술.무력에 대적이 되지 않는다 하여 버릴 것이 아니라 예의를 근본으로 확립하고 그 위에 다른 나라의 장점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역설했다. 그는 또 자기의 본성을 잃어버리고 남의 풍속을 따라가다가는 독립이 된다 하더라도 남의 노예되기는 마찬가지라는 문화패권주의를 경계하는 논리도 폈다. 회봉의 우려는 적중했다. 지난 반세기는 경제적으로 "기적"을 이루었다지만 문화적으로는 서양문화의 모방에 급급해 고유의 정신적 바탕을 깡그리 잃어버린 불행한 시기였다. 좀더 거슬러 올라가보면 개항이후 한국은 전통과 단절된 위기상황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선진을 따라가는 후진은 선진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를 반복할 필요가 없는 것이 특권이랄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도 선진이 걷는 길을 실수를 거듭하며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어리석은 꼴을 보인다. 미국의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는 "미국 지금-변화하는 문화의 인류학"이란 저서에서 80년대초 미국사회에서 나타나는 병적인 문화현상을 예시하고 있다. 폭력범죄의 증가, 예의 없는 아이들, 문화파괴 성행, 혼전 섹스 혼외 정사의 일반화, 이혼 증가, 동성연애자 급증, 점쟁이에 대한 관심증가 등이다. 그는 미국인들이 선조들의 청교도적 규율 등 도덕적이고 정신적인 전통가치를 상실하고 관능주의 쾌락주의 자기도취 경향 같은 정신조류에 휩쓸리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국에서는 최근에만도 파출소 경찰관 피습사건, 범죄자를 쫓던 시민의 죽음 등 폭력범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가정주부와 여고생이 몸을 팔고 동성애자들이 클럽을 조직하는가 하면 TV에 출연까지 했다. 무당이 쓴 예언서가 나오기만 하면 날개 돋친듯 팔려나가고 굿거리 장단같기도 하고 티벳불교의 주문같기도 한 가사와 리듬의 노래가 청소년들의 인기를 몰아가고 있다. 한마디로 사회 전체가 들떠 있다. 어쩌면 그렇게 미국 사회현상과 꼭 닮았는지 연구과제가 아닐 수 없다. 세계화의 추세로 국적이 없어진 문화현상인지, 세기말의 공통적 문화현상인지 가릴 길은 없지만 이런 현상이 예와 의를 기본정신으로 삼았던 한국의 전통문화와는 무관한 것임엔 틀림 없다. 호랑이처럼 되기 위해 이빨을 뽑은 코끼리나 독수리처럼 되기 위해 깃을 뽑아버린 봉황이 된 것은 아닌지. 한국의 고유한 전통문화를 스스로 쓸모 없는 술지게미나 성가신 혹처럼 생각한 적은 없었는지 모두의 성찰이 아쉬운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