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7일자) 저 사진은 무얼 말하는가

몽둥이를 든 데모학생을 향해 제복입은 경찰 여럿이 무릎을 꿇고 울며 손을 비비는 사진을 신문에서 보고 무슨 생각들을 했을까. 6.25를 겪은 세대라면 인민재판을 떠올렸을 법도 하다. 그러나 생각을 이으면 북한 망하는 것이 시간문제라는 예언을 믿기보다 무법천지 끝에 대한민국이 먼저 무너지는 것은 아닌가 하는 강박감에 소름 끼친다. 생각해 보자. 오랫동안 남한의 이런저런 취약점을 지켜본 북한정권이 누가 조금만 부추기면 먼저 망할 곳은 가난한 그들이 아니라 풍요속 자중지란의 남쪽이란 계산을 했음직하고 그렇지 않았다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은가. 경제난 가속화에다 후계 지연, 응집력 해이에 직면할수록 저들의 그런 필요는 더 절실하다. 계산으로 끝날 그들이 아니다. 대남 선동전술을 구사하고 있는 증거는 수없이 노출돼 왔고 이번 한총련의 과격화는 그 대표적 사례다. 누구나 잠시, 벌어져 가는 남북 국력의 격차나 세계조류 등 객관적인 조건을 감안하면 그것이 부질없는 오산이라는 결론에 이른다. 그러나 현실은 논리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다. 8.15에 판문점으로 향하는 학생대열이 경찰과 격돌을 벌인 것은 한두해가 아니다. 그래도 숨결이 잦아들기는 커녕 갈수록 극렬해지는 사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나라안으로 경기순환은 있어도 소득수준이 향상되고, 정치가 답답하다곤 해도 민주화로의 진전은 분명하다. 북은 어떤가. 5년 연속 후퇴에 수해가 겹친 경제사정은 끼니를 건너는 형편이고 그럼에도 죽은 수령의 시신보전에 칠팔천만 달러를 쓰는 폭정이 자행된다. 그런데 그런 북한은 미화, 추종해야할 선이고 남쪽의 모든 것은 몽둥이로 부숴야할 악이란 말인가. 물론 넓게 생각하면 기성세대가 책임을 면할수 없다. 특히 해마다 겪어온 사태에 대비하지 못한 당국의 책임은 규명돼야 마땅하다. 그러나 결정적인 실패는 "젊은이의 언행은 순수한 동기에서"라는 온정주의에서 온다. 그것은 관용이 아니다. 한마디로 표를 잃지 않으려는 정치의 자기기만이고 뒷날의 책임회피를 염두에 둔 당국의 자기변호 논리일 뿐이다. 순전한 학내문제까지 포함, 사사건건 거리로 몰려나와 폭력에, 시민을 괴롭히며 파괴를 일삼아도 번번이 흐지부지하는 관행이 문제다. 민심을 의식한 선처로 끝난다. 양순한 민심은 외면하고 사나운 소수에만 신경을 쓴다. 관행은 중단하기가 어렵다. 점점 한계를 넓혀온 나머지 한총련의 저런 무법과 경찰관 가해까지도 통일의 염원에서 오는 조금 지나친 행동이라는 투의 정가논평을 부른다. 그 뿐인가. 시위경력자의 잦은 원내진출, 고위직 인선이 자칫 엄선과정은 사상된채 영웅심리를 자극하는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지금 북한에 대한 어떤 성급한 오판도 이르다. 그리 쉽게 무너지지도 않으려니와 그렇다고 대를 잇는 1인독재를 미화-추앙하여 그 체제하의 통일을 쟁취하려는 세력이란 평양의 지령아니곤 존재할수 없다. 미군철수, 보안법 폐지, 1민족 1국가 2체제, 정치-군사 비동맹, 민족회의 구성등 한총련의 통일방안은 북한의 것과 너무나 똑 같다. 이를 어찌 설명할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