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한자간판 .. 김대영 <쌍용할부금융 사장>

서울 거리에서 한자간판이 자취를 감추어가고 있다. 도로표지도 상점간판도 모두 한글 전용으로 되었다. 이것이 과연 최선의 방법인가 하고 의문을 갖게 된다. 우리가 일본에 갔는데 공항에서부터 안내판 길이름 관청.상가의 간판이 한자가 아닌 가다가나나 히라가나로 모두 써 있다면 얼마나 생소하고 불편하게 느껴질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면 우리의 한글전용 표시가 우리를 찾는 한자문화권손님들에게 매우 큰 불편을 주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손님을 편하게 해주는 것이 현대경영에서 강조하고 있는 "고객만족" 경영이 아닌가. 한글 전용이냐, 한글-한문 혼용이냐 하는 문제는 건국이래 어문학계와 교육계에서 끊임없이 논의되어 왔다. 그러나 나는 비즈니스맨의 한 사람으로서 이제는 상용한자 정도는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더군다나 앞으로 중국어권 사람들과 교류가 급속히 확대됨에 따라 많은 우리 젊은 세대가 중국어를 배워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한자를 미리 상용하고 익혀두어야 한다. 12억의 인구를 가진 중국의 수입규모는 매년 25%씩, 경제규모는 최근 6년만에 2배로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그리고 전세계에 걸쳐 5,700만명의 인구를 가진 화교 네트워크의 경제력은미국 일본 다음으로 세계 3위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나이스비트는 "메가트렌드 아시아"에서 앞으로 사업을 잘 하려면 화교 동업자를 구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나는 이러한 노파심에서 내가 근무하는 회사의 간판을 굳이 국.영.한문으로병기해 놓고 있다. 그러고 보니 명동일대에 한자간판은 "쌍용할부금융 주식회사"(써놓고 보니어려운 글자만 다 모였다)와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 그리고 그 인근의 중국집 서너군데 뿐이다. 이제는 웬만한 우리의 간판에도 적어도 상용한자 정도는 써 주는 것이 어떨까 생각 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