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7일자) 8.26선고의 사법성과 역사성

성공한 쿠데타에 대해서도 역사의 심판은 준엄했다. 어제 1심 재판부는 한때 날으는 새도 떨어뜨릴 듯 서슬이 퍼렇던 전두환 전대통령에 반란수괴죄 등 10개 죄목중 반란목적 살인죄만을 배제, 구형대로 사형을 선고했다. 노태우피고에는 다소 감량, 22년6월이 언도되고 2인의 수천억원 거액 수회엔 몰수형이 병과됐다. 재판부는 광주시위 진압에서의 내란목적 살인죄만은 증거불충분을 이유로 피고 모두에 유죄를 부인했으나 초점인 12.12의 군사반란, 5.18의 내란죄 성립을 인정, 소추의 본지를 받아 들였다. 확정까지는 수개월을 요하나 어제의 판결은 이미 그것으로 의의를 구현했다. 성공자체가 면죄부였던 무력에 의한 집권을 사상 최초로 단죄, 이 땅에 사법적 정의가 살아 있음을 판시함으로써 쿠데타순환의 고리를 끊는 "역사 바로 세우기"에 획을 그은 것이다. 그동안 재판은 공소시효를 둘러싼 절차적 타당성, 육참총장 체포의 사전재가유무 등 12.12의 적법성, 5.17 5.18의 반란목적 유무와 수천억원 기업자금 수취의 뇌물성 시비 등 많은 사회적 논란과 원-피고간 열띤 공방을 불렀다. 이런 쟁점에 대한 재판부의 심리에 실체진실 발견에 기울인 고충이 역력하다. 2, 3심서도 찬반을 부르겠지만 내란목적 살인부분의 무죄선언이야 말로 고충의 한 단면이라 이해된다. 사실 국내뿐 아니라 온 세계가 지켜보는 이 재판을 통해 한국의 법치능력이 평가된다 해도과장은 아니다. 그럴수록 재판부가 만일 여론을 의식, 선고형량에만 매달린다면 양형이유나 증거력의 판단 등 구체적 타당성을 확보하는데 소홀하기 쉽다. 돌이켜 보면 3공 18년을 경험한 한국 국민으로서 5공의 집권 정당성을 문제삼기란 벅찬 측면이 있었고 전-노씨의 구국충정 통치자금 주장도 발을 붙일 소지가 없지 않았다. 그 엉거주춤하던 여론의 행방이 어떻게 여기까지 급변했는가를 우리는 통찰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역사에서 얻는 교훈을 반복적으로 망각할수 밖엔 없다. 과연 재판을 이만큼 가능케 한 저력은 무엇인가. 한 야당의원의 전직대통령 거액 비자금 발설이 과장이기 커녕 전-노양씨의 천문학적 촉재로 입증되면서 치솟은 국민적 분노,그것이다. 10년전 백담사에 가며 139억원을 몽땅 국고에 반납한다던 전씨의 맹세는거짓이었다. 박준병씨 무죄, 중회 기업인에 대한 실형선고등 총 34명에 이르는 방대한 사건의 대기업주의 강요된 헌금이 실형을 받는데서 오는 기업의욕의 저상은 특별한 고려를 요한다. 그러나 모든것은 간여 법관들의 역사적 사명의식 법률지식 심증 양식에 의탁하는데 인색할수 없다. 다만 개별 양형에 있어 정상참작을 했다고는 해도 재판은 어디까지나 사법관단의 범주를 넘어서긴 힘들다고 믿는다. 금후 항소심 상고심이 진행되면서 새 증거 등 드러나지 않은 새로운 진실이 발견될지, 형확정후 사면등 사법외적 고려가 따를지 아닐지 역시 모른다. 다만 그때의 여건, 역사소명에 오지랖 넓은 피고들의 참된 반성이 주요 요건이 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8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