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동아시아 과학사회의] (기고) 서울회의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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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상용 지난달 26일부터 1주일간 서울에서 열린 제8회 국제동아시아과학사회의가 막을 내렸다. 세계 15개국 과학사학자 200여명이 모여 벌인 큰잔치였다. 심포지엄 분과회의 특별회의에서 다양한 주제의 논문 122편이 발표되고 활발한 토론이 이어졌다. 요즘 여러분야에서 많은 국제회의가 열리고 있지만 이런 규모와 수준의 회의는 흔치 않다. 50년대 이전까지만해도 서양사람들은 동양에 과학기술이 있었다는 사실조차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영국의 세계적인 과학사학자 조셉 니덤이 거작 "중국의 과학과 문명"을 펴낸이후 이 잘못된 인식은 고쳐졌으며 오히려 서구보다 앞섰던 동아시아의 과학유산을 발굴하려는 작업이 가속화되었다. 지난 82년 벨기에 루뱅에서 출발한 국제중국과학사회의는 90년 영국 케임브리지회의에서 국제동아시아과학기술의학사학회의 발족을 보게 됐으며제7회 일본 교토대회부터 국제동아시아과학사회의로 확대되었다. 우리나라는 제5회 미국 샌디에이고회의때부터 참가하기 시작, 8년만에 서울회의를 유치하는데 성공했다. 이번 회의에서 가장 관심을 끈 것은 동아시아 세나라의 대표적인 과학사학자들이 한 기조강연이었다. 먼저 중국의 석택종은 중국과 이웃 나라들의 과학교류에 관한 중국과학사학계의 활발한 연구를 소개해 주목받았다. 일본의 나카야마 시게루는 중국과학이 동아시아 전체로 전파해 나간 과정을개관하면서 한국의 몫을 강조했다. 한국과학사학회 박성래회장의 "동아시아과학사서술에서의 자랑과 편견"은 거센 회오리바람을 일으켰다. 박교수는 최근에 있었던 한국의 과학문화재 천자총통조작사건을 소개하고 한국사의 국수주의적인 경향을 반성하는등 통렬한 자기비판을 했다. 남을 때리기 전에 자기부터 치는 교묘한 전략이었다. 고대 일본문화가 대부분 한국에서 전래되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학자들은 한국의 기여를 깎아내리거나 묵살하는 파렴치한 주장을 일삼아 왔다. 박교수는 고대 일본기록에서 뽑은 통계자료를 근거로 일본 과학사학자들의 역사왜곡을 신랄하게 반박했다. 젊은 일본 학자들이 이 비판에 열렬한 박수를 보낸 것은 뜻깊은 일이다. 박교수의 중국비판은 가장 주목을 끈 부분이다. 중화사상에 깊이 젖은 중국학자들은 주변 나라들의 업적도 모두 자기것이라고 억지를 쓰고 있다. 15세기 세종때 처음으로 만들어낸 측우기와 1966년 우연히 발견된 세계에서가장 오래된 8세기초의 다라니경을 중국학자들은 중국에서 만들어 한국으로보낸 것이라고 우기고 있다. 박교수는 중국학자들의 왜곡이 서양학계에 그대로 받아들여져 공인된 사실이 되어가는 것을 통탄하면서 설득력있는 반론을 펼쳤다. 이에 대해 중국학자들은 침묵을 지키고 있으나 미국의 중국과학사학자 네이슨 시빈교수(펜실베이니아대)가 한국을 잘몰랐던 때의 잘못은 당연히 시정되어야 한다고 한 것은 주목할만하다. 박교수의 강연은 외국학자들 사이에 폭넓은 공감을 얻었고 앞으로 상당한 반향을 일으킬 것 같다. 이번 회의를 치르면서 우리가 반성할 여지가 많음을 통감했다. 한국의 동아시아과학사 학계는 너무나 초라한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는 50여명의 연구인력을 갖고 있지만 활발한 연구를 하고 있는 학자는그 반도 안되는 실정이다. 한국과학사를 본격적으로 연구하는 외국학자가 하나도 없고 국제학회의 임원에 한국인이 끼이지 못한 것도 안타까운 일이다. 외국학자들의 한국과학사 왜곡도 연구와 발표를 게을리해온 한국학자들의책임이 크다. 이번 회의를 국내언론과 여러기업이 적극 지원한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서울회의가 경제 스포츠뿐만 아니라 학술연구를 고무해 국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