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동아시아의 인프라 .. 이필곤 <삼성물산 부회장>

80년대 이후 동아시아 지역 국가들의 급격한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전력 통신 항만 도로 수자원 등과 같은 인프라(사회기반시설)를 확충해야 하는 막중한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이 도전에 대응해 아시아 각국 정부들은 민간부문의 참여와 자본을 최대한 이용, 인프라를 확충하는데 큰 관심을 갖고 있다. 이는 민간부문이 자금 조달과 효율적인 운영 노하우 면에서 상대적인 이점이 있음을 반영한 것이다. 동아시아의 경제성장이 가속화됨에 따라 민간부문의 참여에 의한 인프라 사업은 향후 좋은 전망을 갖고 있지만 최근까지의 민자인프라사업 경험은 만족스럽지 못한 상태다. 현재 양해각서나 의향서가 체결되어 있는 인프라 사업은 많아도 실제로 금융조달이 완료돼 성사된 인프라 프로젝트는 그리 많지 않은 실정이다. 민자 인프라 사업이 활성화되려면 몇가지 기본전제가 요구된다. 첫째 민간주도 인프라사업에 대한 거부반응을 극복해야 한다. 종종 민자 사업을 민간기업의 이권 사업으로 치부하는 비판이 있는데,이러한 시각은 민간기업의 인프라사업 참여를 복잡한 정치 문제화시킬 수 있다. 더욱이 대기업에 대한 규제가 심한 국가에서는 민간기업 주도의 인프라사업은 상당한 논란의 대상과 정치적 문제와 연관될 수 있다. 둘째 민간 인프라 사업자의 선정에 있어 공개성 투명성 객관성이 요구된다. 사업자선정 등에 대한 정부결정이 사전에 공표되고 보다 잘 정의된 세부 기준에 따라 공개적으로 진행돼야 하는데 최근 아시아 국가에서 진행되는 민간 인프라사업은 평가기준이 불명확하고 비공개적으로 진행돼 정치적 특혜라는 비난을 받는 경우도 있다. 셋째 정부와 공공기관은 민자 인프라에 대하여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민간 인프라사업은 비록 인프라서비스를 민간 사업주가 제공하지만 서비스의 본질은 공공재라는 점을 공공 부문이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 물론 복잡한 계약서작성 및 대규모의 금융조달에도 시간이 걸리겠지만,정부는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일정관리를 하고 각종 승인절차에 소요되는 기일도 단축하는데 힘써야 할 것이다. 넷째 각국의 민간 인프라사업에 대한 법적-제도적 규정이 제대로 갖추어져야 하고 효과적으로 준수돼야 한다. 특히 인프라사업은 정부의 제도적 사업보장 내지 위험 경감장치가 없으면 민간부문의 활발한 참여를 기대하기 어렵다. 따라서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과 같은 기관에서 이러한 측면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다섯째 각종 위험요인이 있는 민간 인프라사업에서 누가 어떠한 리스크를 떠안아야 하는가에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결론은 해당 리스크를 누가 가장 낮은 코스트로 잘 관리할수 있는가에 따라서 위험을 배정해야 한다. 전력부문과 같은 인프라사업은 초기에 막대한 자본투입이 필요하고 사업위험을 경감하기 위하여는 공공기관과의 구매계약이 필요하다. 여섯째 세계은행에서 일부 국가에 인프라펀드 설립을 지원하고 있는데 로컬금융의 열악한 조건이 우선 개선돼야 한다. 인프라사업에 대한 여건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금융정책과 제도개혁,장기채권 등의 수단을 채택하여 금융-자본시장을 발달시켜야 하며,필요하다면 외자도입도 전면 허용토록 검토돼야 할 것이다. 미국이나 서구 등의 경우와 달리 아직까지 아시아 국가에서는 민간 주도의 인프라사업은 비교적 새로운 개념이고 막대한 성장가능성이 있는 반면 또한 많은 변수와 위험을 수반하고 있다. 인프라시설을 완공하기 위한 설비 수출과 건설공사는 민자 사업의 한 부분에 지나지 않는다. 민간부문의 보다 적극적인 사업참여를 유도키 위해 정부당국은 보다 적극적으로 책임을 부담하며 민간부문의 참여를 촉진하여 공정경쟁 원칙하에 투명하고도 신속한 절차로서 사업자선정을 지원해야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 정부와 공공기관이 고려해야 할 점은 인프라 사업관련 특별법 제정 중립성을 지킬수 있는 정부내 전담기관의 설립 관련 정부부처간 협조,정책 조정 강화 독립된 제3의 평가기관 활용 민간사업자의 보호 및 유치 활성화를 위한 각종 개런티 프로그램의 제공과 인센티브 제공 등이다. 결론적으로 인프라 사업의 지속적인 활성화를 위해서는, 민간부문과 정부의 확고한 의지, 상호 협력과 지원뿐 아니라 세계은행과 아시아개발은행과 같은 다국적 금융기관(Multilateral Agency)등의 협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파키스탄이나 필리핀과 같이 비교적 성공적으로 인프라 사업이 진행된 가장 큰 요인은 정부의 확고한 의지와 적극적인 지원에 있었기 때문이다. 이 지역의 대부분의 정부들은 국가의 인프라가 효율적인 방법으로 계속 확장되지 못하면 동아시아 경제권의 국제경쟁력과 활발한 경제성장이 다음 세기로 지속될 수 없다는 점을 유념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