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경제팀의 책무 .. 김완순 <고려대교수/무역학>

한승수 경제팀의 경제운영 구상이 공개되었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 문제에 대한 대처 방안에 있어 전임 경제팀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것이 대체적인 평가인 것 같다.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하면 이들로부터 과거와는 다른 획기적인 정책방안을 기대하는 심리가 우리의 마음속 깊이 자리잡고 있다. 이는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무언가를 추구하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속성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과거 정부가 주도한 경제 개발을 위해 빈번하던 정부의 강도 높은 정책에 우리 국민이 오랫동안 익숙하여 왔던 역사적 사실도 이러한 기대 심리의 큰 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갈수록 악화되는 경제 상황이 새로운 반전을 기대하는 심리를 더욱 부추긴 것은 사실이다. 획기적이든 혹은 그렇지 않든 하나의 정책에 대한 평가는 역시 총체적인 경제 구도에 대한 이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현재 한국의 경제 현실이 과거와 다른 것은 물론이다. 우선 경제의 규모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으리 만큼 커졌고 경제의 구조도 상당히 고도화되었다. 정부가 어떠한 획기적인 처방을 하는 것 자체가 현실적으로 어렵게 된 것이다. 이러한 경제구도 하에서 모든 문제의 해결은 기본적으로 시장원리에 기초하여 이루어져야 한다. 따라서 새로운 정책에 대한 지나친 기대는 우리의 경제 현실과 거리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경제팀은 우선 현재의 경제 위기를 전임 팀 보다는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다. 그렇다고 이에 대한 처방을 경기부양 정책에서 찾지는 않았다. 물가의 안정을 기반으로 기업의 활력회복을 통해 문제에 접근하고 있다. 중요한 지적이다. 한국 경제가 현재 저성장 고물가, 그리고 국제수지 악화로 특징지어 진다면 물가 안정이 문제 해결의 시원임은 자명한 사실이다. 물가안정을 통해서만 임금과 땅값, 그리고 저축 증대와 국제수지 개선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겪고 있는 경제 위기는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되었다. 한마디로 기술 수준에 비해 우리상품의 가격이 지나치게 높은 것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하루 아침에 해결될 수가 없다. 장기적으로 차분히 구조 조정을 통해 체질을 강화하는 것 이외에는 별 방법이 없다. 이 구조 조정에는 일반 경제활동에 대한 정부의 간섭을 줄이는 것도 물론 포함된다. 오히려 지금 보다 훨씬 작은 정부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인식을 바탕으로 판단하면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오히려 자명해 진다. 우선 단기적 인기에 영합하지 말고 우리 경제의 현실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알려야 한다. 아울러 경제 정책의 입안과 집행에 있어 투명성을 유지하여야 한다. 이와 같은 자세를 정부가 견지할 때 국민과 정부간의 신뢰관계가 구축될 수 있다. 정부의 장기적이고 안정된 정책은 국민의 신뢰가 없으면 실행이 불가능하다. 새 경제팀의 경제운영 방안이 과거의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는 사실은,역설적으로 새로운 경제팀이 비교적 솔직하게 우리 경제의 현실을 인정한 것이다. 새 경제팀의 정책방향 의미는 바로 이러한 정부의 솔직성에서 찾을 수 있다.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일반 국민의 지나친 기대는 정부의 전시적 행정과도 관계가 있다. 안정된 물가를 유지하며 환경오염의 공포에서 벗어난 경제생활을 영위하려면 과거와 같은 고도성장은 불가능하다. 이러한 현실을 국민들에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과거 정부는 얼마나 진실된 노력을 하였는가. 이를 위해 정부는 지금부터라도 솔직한 자세로 고도성장은 환경 훼손,물가상승 등의 대가를 치르지 않고는 달성하기 어렵다는 점을 차분히 설명해 주어야 한다. 새로운 경제팀은 정치로부터 경제를 보호해야 한다. 앞서의 안정화노력은 정치적 인기를 위해 경제가 제물이 되지 않는 경우에만 실효를 거둘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점에 있어서도 새 경제팀은 정책의 투명성을 추구하고 솔직해져야 한다. 그리고 안정화 정책은 무엇보다도 정부의 솔선수범이 앞서야 한다. 정부도 지출을 줄이며 허리띠를 졸라 매야 한다. 이러한 의지를 강하게 비친 새로운 경제팀에게 선진 경제에 맞는 실질적인 경제운용을 기대해 본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