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성공했다] 오세원 <협진단철 사장> .. 종업원 신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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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조는 한 나라의 기계공업수준을 반영한다고 한다. 그러나 기계공업의 기초산업이면서도 대표적인 3D업종으로 꼽히는 것이 단조이다. 섭씨1,300도의 뜨거운 불, 시끄러운 소음, 흔들리는 진동 등으로 단조 작업장은 마치 "전투장"을 연상케 한다. 협진단철의 오세원사장(61)은 이같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단조업외길 28년을 걸어오며 국내 알루미늄단조의 선두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기업인이다. 경기반월공단 1호 입주업체인 이 회사의 강점은 자유단조 형단조를 겸비한 종합 단조공장으로 스틸과 비철금속으로 어떤 형태의 복잡한 형상도 만들어낼 수 있는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를 갖췄다는 것. 특히 알루미늄단조부문에서 지난4월부터 일본 도시바에 중전기부품의 수출을 시작하는 개가를 올렸다. 삼성항공 등에 각종 알루미늄 단조부품을 개발, 납품하고 있으며 프랑스에서 수입해오던 종감속기하우징을 국산화, 통일중공업에 공급하고 있다. 그간 매년 10억원이상의 설비투자로 확충한 스크루프레스 유압프레스 에어해머 등 다양한 설비와 함께 끊임없는 연구개발로 3기통 크랭크 트위스트공법을 처음으로 개발했는가 하면 유압프레스를 활용, 국내 공단조기술을 향상시켰다. 올해 매출액목표는 180억원.매출액 65억원을 기록했던 4년전에 비해 무려 3배 가까이 신장된 규모이다. ""오늘의 협진단철"은 힘든 환경에도 불구, 묵묵히 일해온 120명직원들의 똘똘 뭉친 팀워크 덕분입니다. 진정한 땀의 의미를 되새기며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이 고마울 따름이지요" 오사장은 "28년간 한번의 노사분규도 없이 "최고로 믿을 수 있는 회사를 만들자"는 캐치프레이즈아래 동고동락해온 직원들에게 뿌듯함을 느낀다"고 밝힌다. 은행원을 거쳐 서울영등포에서 철재상을 하던 오사장이 회사를 창업한 것은 지난 69년. 당시 단조공장에 철재를 납품하면서 단조가 기계공업의 기초산업으로 도전해 볼만한 유망업종이라고 판단, 뛰어들었다. 서울 개봉동에서 350평규모의 임대공장에서 단조를 시작했다. 이후 해당구청으로부터 공해업종으로 분류돼 조업중지명령을 받아 경기반월공장으로 이전한 것은 지난79년. 당시 반월공단은 전화가설과 도로포장마저 안돼있던 상태. 열악한 환경에서도 협진단철은 꾸준히 성장, 85년 유망중소기업선정,91년 우수기업대통령표창 등을 받았다. 그러나 92년 국내 전산업에 불황이 닥치면서 상황이 반전, 최대의 위기를 맞았다. 주문이 급격히 감소, 매월 4,000만~5,000만원에 달하는 적자가 이어졌던 것. 오사장은 이때 능률협회를 찾아 컨설팅을 요청했다. 93년부터 3년간 컨설턴트 정일구씨의 도움으로 수직적인 조직구조를 팀제로 바꾸는 조직개편을 단행하고 재고축소 원가절감 등 생산성향상작업에 들어갔다. 2,000t에 달하는 원자재재고를 800t규모로 줄이고 제품재고없이 주문량만 생산했다. 이같은 경영의 혁신으로 협진단철은 어려움을 극복, 스틸은 물론 알루미늄 단조부문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탄탄한 업체로 자리잡았다. 협진단철은 앞으로 항공기 차량 및 수송장비의 경량화추세에 맞춰 알루미늄단조부품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매월 둘째주 수요일에는 전사원들이 모인 가운데 전달의 실적과 회사수지현황을 공개합니다.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면 이익이 나고 이는 결국 구성원 모두에게 혜택이 간다는 취지에서지요" 오사장은 "종업원들과의 상호신뢰가 바탕이 돼야 회사가 발전할 수있다"면서 "우리나라 기계공업발전에 미력이나마 공헌할 수 있도록 애쓰겠다"고 강조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