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근검할 수 있는 자유 .. 양봉진 <국제1부장>

나라경제가 어렵다고들 야단이다. 올해 경상수지 적자가 200억달러가 넘을 것이라는 전망 하나로 모든 상황집계는 끝나 있는 상태다. 따라서 이른바 과소비는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움직일 수 없는 중심의제가 되어 버렸고 "우리 모두 좀 자제할 필요가 있지 않느냐"는 지적은 당연한 수순이다. 같은 맥락에서 외제 자동차에 대한 눈흘김과 무절제한 해외여행 및 사치품 구입이 시빗거리가 되는 것 또한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느새 "내일을 위해 근검하자"고 외칠 수 있는 자유가 박탈된 시대에 살고 있다는데 말 못할 고민이 있다. "죄수들의 고민"(prisoners'' dilema)이라고나 해야할까. "과소비추방운동=수입규제"라는 등식을 들고 나오는 이웃들이 눈을 부라리고 있기 때문이다. 큰 미국차는 우리 도로사정에 맞지도 않고 고장이나 사고가 나 수리하려 들면 애를 먹는다는 진실을 말했다가는 미국대사관이나 미국상공회의소로부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천기를 누설했다고 호되게 야단 맞게 돼 있는 게 우리의 실정이다. 현대 기아 대우차만 굴러다니는 서울은 "지구촌의 이상한 나라"라는 인상을 풍기기에 충분하다. 사실상 외국사람들 주장처럼 서울에 외제차가 많이 굴러다니는 것은 보기에도 좋고 장기적으로는 우리가 남들과 장사하는데도 도움이 되는 일이다. "자기 것만 챙기는 한국인들과는 장사를 해봐야 소용이 없다"는 소리를 듣지 않고 거래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이 강요된 인식일 경우 즐거운 일이 아닌 것은 누구에게나 마찬가지다. 지구촌 규율은 바뀌고 있다. 그 변화가 지구촌인들의 공감대와 상호이해 속에 이루어지는 것이라면 이의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요즈음 들어서는 "지구촌 규율"을 미국인들 혼자 만든다는데 대해 많은 사람들이 식상해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담배는 마약"이라고 선언한 사람들이 외국에 대해서는 담배를 마음껏 팔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해 주지 않는다고 야단친다면 그것은 이중잣대다. "테러를 일삼는 쿠바 리비아와 장사하면 가만 놔두지 않겠다"는 식의 초국제법적 "헬름스-버튼법"에 대해 캐나다 멕시코 EU가 저항하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닌텐도 게임"과 다를바 없었던 클린턴의 람보식 "이라크 혼내주기"는 순수하지 못한 동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는 눈총을 받아 싸다. 내가 만나는 미국사람들은 한국이 안고 있는 대외수지적자와 빚이 한국의 경제적 능력에 비추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그렇게 봐주는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것은 우리의 껍데기만 본 미국인들 나름대로의 평가일 뿐이다. 우리 스스로가 그런 얘기가 나오도록 만든 면도 전혀 없지는 않다. 외신에서는 단 한 줄도 취급하지 않는 김영삼 대통령의 남미순방을 위해 어마어마한 수의 언론인과 수행원들이 따라 다니며 외화를 낭비하는 상황에서 과소비 자제를 외쳐댄다는 것 자체가 우스꽝스러운 일인지 모른다. 우리와 비교하면 미국인들은 이미 50년 전인 1945년에 핵무기를 사용했고, 26년 전인 1969년에 인간을 달에 보낸 사람들이다. 가공할 기술을 가진 미국인들로서는 "빚 좀 있다"는 게 큰 걱정거리가 아니다. 게다가 "제3의 물결"이라고 불리는 정보사회 인프라는 미국이 설정하는 표준에 맞춰져 있다. 미래사회 경쟁력의 열쇠를 쥐고 있는 셈이다. 마켓 리더로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미래의 황금어장을 자기들 구상대로 설계해가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사람을 달에 보내는 것을 꿈정도로 생각하는 우리 처지에 "1년에 200억달러 적자"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큰소리 치는 것은 방종에 불과하다. "새로운 미국"(To Renew America)의 저자 깅리치 미하원의장이 거듭거듭 부르짖는 것은 다름아닌 "미래세대를 위한 오늘의 희생"이다. 우리 한국인이 부르짖는 "과소비 추방"이야말로 깅리치가 외치는 미래를 위한 근검이다. "근검할 수 있는 자유"는 신성한 권리이다. 그러나 우리가 "로빈슨 크루소국"을 지향하지 않는 이상 당당하고 떳떳한 권리행사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오해를 유발하지 않는 우리 스스로의 행동방식과 사고가 전제되어야 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