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군졸없는 독불장군 .. 안혜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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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풍성함이 조상들의 은덕이라 믿고 차례를 지내던 추석명절이 올해도 다가왔다. 그러나 풍성함은 커녕 왠지 짜증스럽고 가슴만 답답하다. 국민소득 1만달러, 선진국으로 인정받는 경제개발협력기구(OECD)가입이 눈앞에 있다고 호언장담하던 정부의 발표가 엊그제 일인데 국가경제가 위기상황에 놓여 있다는 보도는 또 무슨 괴변인지 모르겠다. 하긴 장바구니 물가가 하루가 멀다않고 치솟더니 결국 정부의 물가 억제선마저 무너졌다고 한다. 기업체들은 이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임금총액동결, 인원감축등 군살빼기 작업을 추진한다는 소식이니 앞으로 샐러리맨들의 대량 실업사태가 도래될 전망이다. 더구나 어림없는 전세값 폭등으로 무주택 서민들이 길거리에 나 앉아야 할 형편이고, 점심을 굶는 초.중학생들이 해마다 늘어만 가고 있다는 얘기도 들려온다. 며칠전에 보도된 바 있는 오르기만 하는 전세금을 월급으로 감당하기가 어려워 옷을 벗는다는 유능한 중견검사의 용퇴는 파탄일로에 놓여 있는 우리 경제의 한 단면을 극명하게 보여준 실예가 아닐까. 이같이 국가경제는 우리들의 피부에 와 닿을 만큼 어려운 시점에 놓여 있는 데도 야당 부총재라는 사람은 교육감선거에 개입해서 억대의 뇌물을 받아 챙기고 일부 국회의원들은 위원 외교활동을 핑계로 해외에서 호화쇼핑을 했다가 물의를 일으켰다. 거액의 금품을 뿌려가면서까지 교육계지도자 자리를 차지하려는 공직자들의 추태는 가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도 그들은 아직 1년이 훨씬 넘게 남아 있는 대통령선거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것같다. 무슨 대권 주자들은 그렇게도 많은지.그들의 입씨름만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고 어느 당 지도자는 대선을 준비하느라 당권마저 넘기고 아예 발 벗고 나섰다고 한다. 도대체 국가 경제나 국민들의 고충은 안중에도 없는 것일까. 지금이 어느 때인가. 정치인이나 정부는 힘을 합쳐 이 어려운 경제난국을 타개하는 데 전력을 기울여야 할때가 아닐까. 군졸없는 독불장군은 전쟁에서 패하기 마련이다. 국민들의 절대적 지지를 얻지 못하는 독불장군은 대통령이 될수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그들은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답답할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