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비용' 벽을 깨자] (10) 제2부 '금리 국제화'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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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깡패'' 고금리 ] 한국의 제조업체들은 지난해 1천원어치 상품을 팔아 83원을 벌었다. 이중 대출금이자(금융비용)등으로 56원을 물었다. 기타 배당소득을 합해서 겨우 챙긴 경상이익은 36원. 반면 일본기업들은 1천원어치 물건을 팔아 금융비용으로 16원을 썼다. 대만기업의 금융비용도 17원에 불과했다. 국내기업들은 똑같은 양의 물건을 팔고도 일본과 대만기업의 3배이상을 금융비용으로 지출하고 있다는 얘기다. 대부분 고금리 탓으로 빚어지는 이같은 현상에서 기업경영은 애당초 힘들 수밖에 없다. 뿐만 아니다. "금융기관몫(56원)과 기업몫(36원)"은 분명 주객전도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되놈이 버는 꼴일 수도 있다. 고금리가 모든 경제활동위에 군림하고 있는 폭군이자 깡패로 일컬어지는 것도 어쩌면 당연하다. L기업은 지난4월 중국정부가 발주한 1억달러규모의 대형 화학플랜트 수주전에 참여했다. 당초 승자는 L기업이 확실해 보였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일본업체에 밀렸다. 이유는 단 하나. 금리차였다. L사는 수출입은행의 연불금융을 이용해 리보(런던은행간금리)에 1.0%포인트를 더한 나름대로 호조건의 금리를 제시했다. 그러나 웬걸. 일본업체가 리보만 받겠다고 했으니 떨어질 수밖에. 1%포인트 금리차 때문에 그동안 들인 공이 "도로아미타불"이 돼버린 것이다. "고금리라는 모래주머니를 차고 해외기업과 경주를 하고 있다는 말이 실감나는 순간이었다"(L기업 J부장). 해외에서만 그런게 아니다. 국경이 무너져 외국기업의 상품이 쏟아져 들어오는데 그들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싼 금리를 써서 물건을 만들고 있다고 보면 국내에서의 비즈니스도 게임이 이미 끝나 있는 상태다. 지난 7월말현재 한국 대만 싱가포르의 실세금리가 각각 연 11.0 3%, 7.21%,2.29%였다는 점은 한국의 상품이 이들 나라보다 금리부담측면에서만 3~8% 비쌀 수밖에 없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러니 경쟁국 기업들과의 경쟁은 차포떼고 장기두는 격이다. 국내금리가 높은 이유는 여러가지가 꼽힌다. 그동안 투자수익률(성장률)이 너무 높았기 때문이라고도 한다. 물가상승률이 높았던 것도 큰 요인임에 틀림없다. 금융중개효율성이 낮거나 만성적인 자금초과수요현상이 근절되지 않는 것도주된 원인의 하나. 그래서 금리를 낮추는 방안도 백가쟁명식으로 제시되고 있다. 인플레심리를 불식시켜야 한다느니, 성장률을 재고해 봐야 된다느니,금융자율화로 금융중개비용을 최소화시켜야 한다는 것등이 그것이다. 일견 옳은 진단이고 옳은 처방이다. 이런 논리의 종착역은 뻔하다. "금리를 내리는건 당위인데 현상황으론 어쩔수 없다"(김영대 한국은행이사)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금리를 내리면 부작용이 따르므로 매년 1%포인트씩 내리는게 현명하다"(이경식 한은총재)는 "단계적 금리인하론"도 그래서 나오고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기존의 사고방식에 불과하다. 외자를 도입하면 물가를 자극하기 때문에 안되고, 전면적인 금융자율화를 실시하면 금융기관이 망하기 때문에 안된다는 식의 "터부"를 전제한채 생겨난 결론이다. 어떻게 보면 "단기적인 금리인하는 불가능하다"는 논리를 그럴듯하게 포장하고 있는것 이외에 아무것도 아니다. 중요한건 금리를 내리는 것이다. 모든게 다 개국이 되고 있는 마당에 유독 금리만 "국수주의"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 우려되는 부작용은 얼마든지 해결할수 있다. 수없이 많은 "금융규제"를 만든 머리 좋은 금융당국이 건재하니 말이다. 금리국제화는 금융당국의 발상전환에서 출발해야 한다는 얘기다. "2인승인 스포츠카를 몰고 출근중에 차를 태워달라는 세명을 만났습니다.한명은 직장상사였고 나머지는 병원에 급히 가야하는 할머니와 절세미인이었습니다. 이경우 대부분 사람들은 직장상사를 태우는 현실주의자나 인도주의자(할머니), 실리주의자(미인)로 나뉘겠지요. 그러나 이건 최상의 선택이 아닙니다. 직장상사에게 할머니를 태우고 가게한뒤 미인과 단둘이 남는 방법도 있습니다. 금리인하도 그런식으로 발상을 전환하면 가능하리라봅니다"(A그룹 재무팀 K이사)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