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동락] 박광두 <커뮤니케이션즈코리아 이사>

서울에서 대학을 마치고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일요일과 공휴일에는 거의 친구들과 함께 근교 또는 지방에 있는 유명 산들을 찾아다니곤 했다. 지천명의 나이에 이른 금년 여름이 막 시작될 무렵, 경남고 19회 부부동반 정기산악회 모임은 의정부시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사패산 정상의 널따란 바위로 향했다. 아무 때 아무데서 만나도 무턱대고 편안한 사이, 서로의 속내를 일찍부터투명하게 열어놓은 친구들이 부인과 등산을 시작한지 어언 십수년째다. 이 모임의 특징은 여자위주의 하이킹이다. 초대 대장인 홍성봉 회원의 발의로 시작된 이 전통은 2대 최정학대장,3대 임춘섭 대장에 이어 필자가 4대째로 대장직을 맡은 이후에도 줄곧 매월 첫째 일요일의 산행때는 변함없이 어어지고 있다. 남자 회원들은 산행에 문제가 없다. 다들 공부벌레 출신으로서 바둑 검도 골프 등 온갖 잡기에도 프로급인 만능 스포츠맨들이다. 고향을 떠난 객지에서 30여년 간의 험란한 여정을 함께하는 와중에서도 테니스 야구 등산 모임을 통해 체력단련을 소홀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50줄에 들어서 희끗거리는 머리칼,이마와 눈가의 잔잔한 주름살은 차라리 세월의 중량감을 뛰어넘어 성숙한 인성의 표상이랄까. 몇달 전 충청도 월악산 자락에서 맛본 막걸리는 유난히 맛있었다. 향긋한 산채나물과 태양초고추장,시원한 산수한잔과 곁들인 몇 순배의 진득한 막걸리를 동행한 부인들 모두 사양치 않았다. 1,100고지의 피로와 지친 마음들이 일시에 회복되고 좌중은 부인들의 홍조띤 얼굴과 웃음소리로 경쾌해졌다. 이젠 사정이 다르다. 한달에 한번씩의 정기산행에 만족치 않는다. 거의 매주, 아니 일주일에 두세번씩 시간과 기회가 나는 대로 개별산행을 수삼년째 한 결과 부인회원들의 컨디션이 놀랄만큼 달라졌다. "보약 필요없어요! 산에 다니는 것이 제일 좋은 약이더라구요. 팔다리도 쑤시지 않고 허리에 있던 신경통도 깨끗이..." 월악산 막걸리의 약효는 대단했다. 연예대장 (박영선 회원 부인)의 노련한 지휘, 선창으로 귀경길의 버스안은 온통 노래잔치 마당이 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9월 2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