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임 이사회제 도입되면...] (2) '은행간 합병'

"정부가 내놓고 있는 금융산업 개편조치들은 합병은행의 탄생을 위한 시나리오를 읽어가는 느낌이다" 시중은행에서 몇 안되는 기획통으로 정부정책의 흐름을 잘 읽는다는 평가는 받고 있는 서광하 상업은행상무의 말이다. "시나리오"의 서문은 이미 지난 4월에 쓰여졌다. "금융기관 합병및 전환에 관한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예고하면서 부터다. 결론은 합전법 개정이 확정될 때 마련될 것으로 보인다. 이 안에는 은행에 대해서만 예외적으로 인력정리를 허용하는 파격적인 내용까지 담고 있는 것으로 알려질 정도이다. 그러나 이번에 발표된 "은행경영 체제개선안"에서도 충분한 의지를 읽을 수 있다. "해산.영업양도.합병 등 조직의 중요한 변경에 관한 사항은 반드시 이사회에서 심의.의결한다"는 문안은 은행합병을 적극적으로 유도해가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정부가 은행합병을 고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대형화를 통한 규모의 경제 추구이다. 그도 그럴 것이 자산규모측면에서 국내은행들은 턱없이 영세하다. 33개 국내은행의 자산을 다 합쳐도 심지어 일본 도시은행 하나의 자산규모만 못하다. 미국 등 선진국의 은행이 보여준 합병효과도 정부의 논리에 힘을 실어주는요인이다. 80년대후반 마이너스를 기록했던 미국은행의 자기자본 이익률(ROE)이 90년대 들어와 10%이상으로 높아진 것도 그간의 합병붐과 무관하지 않다는게 일반적인 분석이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은행간 합병에 대한 무성한 논의만 있었지 추진주체가 없었다. 두 은행을 합병하면 1명의 은행장은 퇴진해야 하는데 자신의 퇴진을 전제로 은행합병을 추진할 은행장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았던 탓이다. 그러나 앞으로는 합병결정을 "은행장 1인"이 아닌 "이사회"에서 내리게되므로 상황은 크게 달라진다. 은행경영에 직접 뛰어들 주주들이 효율성을 극대화시킨다는 명분으로 합병을 통한 대형화전략을 택할 소지가 높아졌다는 얘기다. 은행들의 준비 또한 예사롭지 않다. 외환은행은 3년전에 이미 합병 예상 시나리오를 만들었다. 한일 신한 상업등 대형 시중은행들은 종합기획부내에 전담직원을 두고 외국합병사례를 연구하고 있다. 물론 예상되는 국내은행간의 합병 매트릭스를 짜는 것도 빼놓지 않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시각이 곱지만은 않다. "대형화=경쟁력강화"라는 시각부터가 잘못됐다는 지적이 우선 나온다. 내부적인 체질강화없이 이뤄지는 대형화는 "서울+신탁"처럼 또 다른 시행착오를 낳을 수 있다는 해석이다. 특히 국내은행들의 경우 강력한 노동조합으로 인해 합병에 따른 인원감축이매우 어려운 상황이다. 설사 정리해고가 허용된다 하더라도 인원감축을 통한 비용절감의 기회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점에서 "인원적인 대형화는 규모면에서의 버블화를 낳을 수 있다"(S은행 K상무)는 견해는 귀담아 들을 만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