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임 이사회제 도입되면...] (3) '책임경영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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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철 은행연합회장은 지난달 21일 오전 급히 과천으로 달려갔다. 비상임 이사회제도의 도입발표가 임박해 있는데 23일로 예정됐던 한승수부총리와 시중은행장들과의 오찬모임이 갑자기 취소됐기 때문이었다. 이회장의 역할은 "책임경영 강화방안"에 대한 은행권의 공동의견을 전달하는 메신저. "행추위제도의 공과를 논하기는 시기상조다. 은행에 대한 자율성 보장이 미흡하다. 공시제도및 감독원기능 강화 등으로도 경영감시기능은 충분하다. 그러므로 무리하게 "책임경영 강화방안"을 추진해서는 안된다"는게 한부총리에게 전달한 내용이다. 최종안은 은행들의 이런 입장과 재경원의 당초 강경했던 안이 중화되며 수위가 낮아진 비상임 이사회제도가 됐다. 그러나 재경원과 은행간에 패인 불신의 골은 여전히 좁혀지지 않았다. 다른 쟁점은 제쳐두고라도 재경원과 은행들은 "책임경영"의 접근방법에 대해서 만큼은 서로 딴 생각을 하고 있는 듯하다. 현재 은행경영에 대한 진단부터 그렇다. "지금의 은행경영은 망하지 않고 중간만 가자는데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특화된 상품없이 서로 베끼기에 급급한 모습만 봐도 그렇습니다. 감독기관이 있지만 최저기준의 감독을 목표로 하므로 기업으로서의 최고달성을 위한 적극적 경영감독.견제기능은 없습니다"(재경원 모국장)란게 재경원의 생각이다. 반면 은행들은 "책임경영요. 현재 되고 있지 않습니까. 부실대출이 생겨도 책임지는 은행임원이 없다고 하는데 그게 어디 하루이틀에 이루어진 부실입니까"(모은행 P상무)라고 주장한다. 현재의 시스템을 바꿀 것이라면 은행의 자율성을 높여주는 조치도 함께 내놓아야 하지 않냐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비상임 이사회의 기능에 이르면 은행들의 목소리는 더 커진다. 은행경영을 모르는 사람들이 어떻게 경영의 중요한 사안에 관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수 있느냐고 의문을 품는다. 자칫 전문가와 비전문가의 의견대립으로 의사결정과정에서 내부갈등이 불거질 소지도 다분히 있다는 것이다. 그러다 보면 소수에 권한을 집중시켜주는 역기능을 낳을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이사회에 참여할 "금융전문가"의 모호한 성격 또한 문제다. 재경원은 부인하고 있지만 금융산업의 변화를 촉진키 위해 "재경원사람"이 차고 앉을 가능성도 있다. 은행장과 상임이사들이 경영부진에 대해 문책당하지 않을 목적으로 "로비"가 성행하는 극단적인 경우도 예상되고 있다. 물론 재경원은 단호하다. "외부이사회제도의 본질은 경영진을 귀찮게 하라는데 있습니다. 다시말해 주주의 이해를 제대로 반영하라는 것이지요"라는 말이 단적인 표현이다. 이사회가 활성화되고 제대로 가동된다면 은행의 자율성도 동시에 높아진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재경원이 사자새끼를 키우고 있는 지도 모릅니다. 이사회 중심으로 은행이 돌아가면 재경원은 아무런 간섭할 여지가 없게됩니다"(박경서 금융연구원 연구위원) 새로운 제도도입의 초창기에 나타나는 일시적인 진통은 통과의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같은 갑론을박에서 알수 있듯이 현재로선 진정한 책임경영이 이뤄질 것이라고 누구도 장담하기 어렵다. 무수한 가정에 기초한 논리들의 설득력도 그래서 약해진다. 다만 "책임경영"이란 화두만이 무겁게 다가올 뿐이다. 만약 "책임경영"이 실패로 돌아갔을 경우 그 책임은 또 누구에게 물어야하는지는 의문부호로 남는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