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공정위의 전속고발권 .. 이재우 <한국경제연>

이재우 최근 공정거래법 개정안의 최종 골격이 윤곽을 잡아가고 있다. 국회 국정 감사과정에서 공정거래 위원장이 답변형식을 통해서 밝힌 공정거래법 개정방안을 살펴보면 그간 개정 초안에서 충분한 검토없이 제시하였던 친족독립회사 개념을 아예 삭제하기로 한 것이나 부당공동행위의포괄주의 도입방안 대신 현행대로 열거주의를 유지하기로 하는 등 상당 부분 민간이나 업계의 의견이 수용된 것처럼 보인다. 특히 그간 부처협의과정에서 공정거래위원회와 법무부사이에 논란을 빚었던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 문제는 일단 현재대로 유지하기로 방침을 정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아직도 법무부나 국회 일부에서는 여기에 대해 많은 반발이 있는 것으로 보여 최종적으로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하기까지는 진통이 남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법무부는 일반불공정행위는 물론 담합 등 다른 공정거래법 위반 사건에 대해서도 검찰이 직권으로 공소를 제기할수 있도록 하고 심지어 일반 시민의 고발도 인정해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반면 공정위는 부당거래거절, 거래상대방 차별등 일반불공정행위는 아예 형사별 대상에서 제외하고 나머지 공정거래법 위반사건에 대해서도 공정위의 고발이 있어야만 검찰이 공소를 제기할수 있도록 하는 소위 전속고발권을 계속 행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두 부처간의 입장차이는 표면적으로 효율적 법집행과 소비자보호 등을 논리로 내세우고 있으나 이면에는 공정거래법 위반사범에 대한 관할을 둘러싼 부처간 밥그릇 싸움으로 비치는 것이 현실이다. 우선 법무부나 국회 일각에서 전속고발권을 폐지하고자 하는 논리는 단순하다. 법무부는 소비자들에게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기업의 불공정행위를 인지하고도 공정위의 고발이 수사에 착수하지 못하는 것은 말이 안된다는 입장이다. 불공정 거래사범의 전속고발권은 과거 경제개발만을 중시하던 시대의 논리로서 기업체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킨다는 우려 때문에 개정이 어려웠다며 소비자인 국민의 입장에서 일부 불공정행위에 대한 현행 전속고발권은 개정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물론 소비자에게 피해를 주는 만큼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 대해서 공정위의 고발없이도 검찰이 직접 기소하여 처벌하자는 주장은 그 자체로 상당한 설득력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법률위반과 달리 공정거래법과 같은 소위 경쟁법의 법집행(law enforcement)에는 보다 신중히 검토해야 할 요소가 많다. 우선 미미한 일반불공정거래 행위에까지 형사벌을 부과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데다 일반시민의 고발권을 인정할 경우 수많은 고발사건으로 업무수행에 막대한 지장을 줄 수도 있다. 고발사건 가운데 상당한 타당성을 지닌것도 있겠으나 경쟁기업을 괴롭히기 위한 소위 무고성 고발이 난무하여 기업활동에 심각한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또 현행 독점규제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에도 손해배상책임조항이 있어 피해를 입은 경우 누구라도 구제받을수 있도록 되어 있다. 또 검찰의 직권수사가 남용될 경우 자칫 경제활동에 심각한 지장을 초래할수 있다. 좋은 사례가 바로 건설업 분야이다. 현재 건설업법 같은 경우 입찰담합에 대한 처벌규정이 있어 협의만 있으면 공정위의 고발이 없이도 얼마던지 처벌할 수도 있다. 지난 1년여에 걸친 검찰의 지속적인 담합수사로 건설업계 전체가 수사대상에 올라 대대적인 조사를 받은 것도 최근의 일이다. 법률만능주의에 따라 검찰이나 법원의 재량권 남용도 심히 우려되지 않을수 없다. 기본적으로 법원이나 검찰은 독점금지와 경쟁정책, 공정거래 문제등 소위 경제적 이슈에 대해서는 공정위보다는 전문성이 떨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기업의 행동가운데 경제적인 타당성과 효율성이 입증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법적 해석이나 판례 때문에 억울하게(?) 법률위반이 되는 경우도 많다. 법원칙이나 판례에 묵여서 경제적으로 효율성이 입증된 사건까지 처벌해야하는 것이 사법적 경직성의 사례라고 할수 있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 문제도 제기될 수 있다. 전속고발권이 폐지된다면 마치 세무서의 세무조사처럼 검찰의 기소나 수사자체가 기업에게는 엄청난 압력수단이 될수 있다. 공정거래법이 징역과 벌금형을 부과할수 있도록 되어 있어 기업에게는 조세문제 못지 않은 압력수단으로 등장할수 있다. 검찰의 수사와 기소가 엄정하고 공평하게 집행된다고 누가 보잘할수 있을 것인가? 기업에 대한 또 다른 정부의 간섭수단이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하기는 어렵다. 경쟁정책의 전문가들 가운데는 공정거래법의 징역, 벌금 등 형사처벌 절차가 경쟁정책의 이슈에는 부적합하다는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이도 있다. 경쟁정책과 관련된 사건의 경우 대개 옳고 그룹의 갈등(conflicts between right and wrong)이 아니라 서로 다른 이해집단간의 갈등(conflicts between different interest groups) 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갈등은 처벌로서 풀기보다는 합리적인 조정으로 풀어야 한다는 주장까지 가능하다. 공정거래나 경쟁정책의 이슈와 관련하여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 등 선진국에서도 전속고발권을 유지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경제적 중요성과 복잡성 때문이라고 여겨진다. 만약 법무부나 일부 시민단체의 주장대로 전속고발권이 폐지되는 경우 경제헌법기관으로서 공정위의 위상과 기능에 대한 심각한 타격이 될 것이다. 어느 나라나 예외없이 법무부와 별도로 공정거래 위원회와 유사한 행정기관을 따로 운용하는 이유도 독점정책이나 경쟁정책의 집행에 있어서는 전문성을 갖춘 기관이 더욱 효율적일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앞서 살펴본 대로 전속고발권 폐지 문제는 그렇게 단순한 사안이 아니다. 다행히 공정거래위원회의 최근 발표에 따르면 전속고발권 폐지문제는 제도를 존속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것으로 보이나 최종 국회 통과까지 아직도 변수는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부처협의와 여론수렴과정에서 보다 신중하게 이 문제에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다. 여론과 인기에 따라 정책을 남발하기보다는 기업하는 사람의 입장에서도 한번더 생각하고 검토하는 균형잡힌 정책을 집행하기는 것이 그 첫걸음이 아닐까?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