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창간32돌] 선진경제 : 경제구조 틀 다시 정립

"한국주식회사"는 추락하는가. 60대초 경제개발계획으로 탄생한 "한국주식회사"가 창업 30여년만에 흔들거리고 있다. 선진국클럽으로 불리는 OECD에 가입하는등 겉모양은 그럴싸하지만 속내는 곪고 있다. 해외 신천지를 찾아 떠나는 기업들의 엑소더스행진이 줄을 잇고 국민들은 과소비에 들떠 분수를 잊고 있다. 창업과 성장의 견인차역할을 했던 정부도 예전의 정부가 아니다. 경제의 흐름을 길게 읽지 못하고 땜질식 처방전만 되풀이 하고 있는지 오래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반도체 호경기덕에 "단군이래 최대의 호황"이란 소리를 들었던 경제의 1년만의 추락.정확한 설명이 쉽지않다. 정부는 반도체수출급감에 원인을 돌리고 있지만 정부의 예측능력부족을 탓하는 사람들도 많다. 시작과 끝이 어딘지 모르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정부와 기업의 책임 떠넘기기만 계속 이어지고 있다. 현 경제의 상황에 대한 인식은 대체로 일치한다. 지금이 "위기"라는 점이다. 우리가 맞고 있는 어려움을 극복하지 못하면 내일은 매우 불투명해질 것이란게 공통적인 목소리다. 정부나 재계 학계에서 제기하는 위기론은 크게 세가지 방향이다. 첫째 우리 경제가 양적인 성장의 한계점에 달했다는 것이다. 최근의 경기위축은 단순한 경기순환상의 내리막국면이 아니라 고도성장의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둘째 최근 경제의 어려움이 외부의 충격이 아니라 내재적 요인에 더 큰 원인이 있다는 점이다. 지난 30여년간의 경제발전사를 돌이켜보면 우리 경제에 준 충격은 주로 외생적 쇼크였다. 70년대의 1, 2차 석유파동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석유파동때보다 더 어렵다는 지금은 "엔저"이외에는 별다른 외생변수가 없다. 우리 경제가 안고있는 내부적 문제점이 더 크다는 지적이다. 셋째 OECD가입으로 상징되는 국제화 개방화다. OECD클럽에 가입한 만큼 개방의 핵심인 자본시장을 포함, 시장개방의 폭과 속도를 점점 넓힐수 밖에 없게됐다. 물론 이 세가지 측면 모두 "위기론"만을 담고 있는 것은 아니다. 가만히 뜯어보면 그속에 모두 새로운 "기회"를 품고 있다. 그러나 주변의 평가는 낙관보다 비관쪽이다. 1류를 따라가는 2류수준이었던 우리의 국가경쟁력이 이제 3류로 튕겨져 나왔다는 지적이 많다. 최근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연구원(IMD)의 국가경쟁력비교는 이를 잘 보여준다. 우리의 국가경쟁력이 지난해 24위에서 27위로 1년사이에 3단계나 무너져 내렸다. 싱가포르는 국가경쟁력이 미국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홍콩은 내년 중국반환을 앞둔 불확실한 장래에도 불구하고 싱가포르다음인 3위에 랭크됐다. 국가경쟁력 하락의 원인은 무엇일까. 정부와 경제계는 우리 경제위기의 원인이자 향후 재도약의 가장 큰 걸림돌이 "고비용-저효율"구조라는데 생각을 같이한다. "고비용-저효율"구조의 타파없이는 지금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기가 쉽지않은 것이다. 우선 "고비용"구조. 고물가 고임금 고물류비 고금리 고행정규제 과소비등 이른바 "6고"다. "6고"는 물론 어느정도 인플레이션을 용인한 지난 30년간의 압축 고도성장의 결과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를 해결하지 못하면 재도약은 불가능하다. "저효율"구조의 타파도 시급하다. 저효율구조의 개선을 위해 정부는 김영삼대통령이 직접 "경쟁력 10% 높이기"운동을 제창했고 재계 금융계등도 이에 적극 호응하고 있다. 기업과 금융계의 조직축소와 인원감축, 금리인하등이 구체화되고 있다. 그러나 일본이 그랬듯 저효율구조 타파의 핵심은 역시 "파괴"다. 정부도 예외가 아니다. 발상의 대전환을 통해 규제를 철폐하고 방만한 관료형 조직을 기업형조직으로 탈바꿈시켜야 한다. 일종의 정부파괴작업이 필요한 셈이다. 21세기는 이제 4년 남짓 남았다. 21세기의 준비는 이러한 "고비용-저효율"의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하는 것이다. 한승수경제팀의 캐치프레이즈인 "기업 활력회복"은 바로 이 과정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 사회 각분야에 쌓여있는 "고비용-저효율"구조의 창조적 파괴. 강도높은 파괴작업만이 추락중인 "한국주식회사"를 다시 살려낼수 있을 것이다. 그래야만 다시 일어설 수 있다. 우리는 그것을 해야만 하고 또 할 수 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