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창간32돌] 통일대비 : "천문학적 통일비용"

"한반도 통일은 우리에게 고통분담을 강요할 것이다" 이런 말은 통독후 독일이 막대한 통일비용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이전해지던 90년대초 국내외에서 본격적으로 나온 것이다. 통일독일은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부으면서도 현재 유럽 최강국으로 우뚝 서 있다. 하지만 우리의 걱정은 그대로다. 준비가 너무 부족하기 때문이다. 통일은 80년대까지 그렸던 장미빛이 더 이상 아니다. 통일되는 즉시 우리는 350만명의 노동당원 100여만명의 인민군 등 적어도 500만명 이상의 실업자를 먹여 살려야 할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북한주민들 상당수가 남쪽지역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이들은 현재 17만명으로 추산되는 외국인근로자 이상으로 인권 사회적 차별 등의 문제를 우리측에 제기할 것이다. 통일한국인의 1인당 국민소득은 통일순간부터 북한에서는 올라가겠지만 남한에서는 3분1 수준으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정부가 내부적으로 준비해둔 것으로 알려진 남북한 경제통합 시나리오는 통일후 10년동안 북한경제를 연평균 20%이상 성장시켜 북한지역의 GNP를 223억달러(95년 기준, 한국은행 추정)에서 1,000억달러로 높임으로써 북한의 생활수준을 남한지역의 40%선까지 접근시킨다는 것이다. 이 목표를 달성하려면 통일후 10년간 매년 GNP의 7~8%에 상당하는 정부재정자금을 북한에 투입해야 한다. 이는 우리 국방비(GNP 3%)의 두배에 이르는 수준이다. 재정부담은 통일초기 3~4년에 집중되고 후기 6~7년간은 가벼워져 초기에 GNP의 15%안팎, 후기에 GNP의 3~4%가 투입될 전망이다. 여기에는 우리측의 엄청난 고통분담이 전제된다. 그렇다면 이런 엄청난 부담을 떠안을 때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는 없는가. 2,300만명(95년기준 북한인구)의 새 시장이 생긴다. 또 통일이 되면 지출하지 않아도 될 "분단비용"이 적지 않다. 특히 북한의 지정학적 위치는 통일후 우리 기업들의 대중국및 러시아진출을 가속화시킬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따라 우리 경제권은 남한 4,485만명, 북한 2,326만명(95년 기준)외에 두만강과 압록강 등 "양강 이북"의 중국 동북 3성과 러시아 연해주지역을 시야에 넣을 수 있게 된다. 현재 남북한과 중국 러시아 몽골이 참여하고 있는 두만강지역 개발계획(TRADP)은 통일한국의 경제지평이 양강 이북으로 확대되고 중국 러시아와의 자유무역지대를 창출할 수 있음을 예고하고 있다. 결국 통일효과의 방향은 통일에 따른 비용과 편익중 어느 쪽을 보고 사전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하느냐의 문제로 귀착된다. 정부는 남북한간 신뢰회복및 경제교류협력 활성화를 바탕으로 민족경제공동체를 형성하다는 장기비전을 마련해 놓고 있다. 정부가 현재 추진하고 있는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4자회담) 남북간 협력을 통한 상호신뢰 회복및 관계 진전(식량지원 등 대북지원 경협 등 교류및 협력) 통일 대비태세 확립및 역량 결집(통일대비 요원양성 등) 등은 이런 장기비전으로 가는 "과정"에 해당된다. 통일비용과 관련, 이같은 과정은 일종의 선투자로도 이해되고 있다. 이같은 정책에 힘입어 90년대 들어 북한을 방문하는 우리 기업인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한전이 북한에 들어가 원전을 건설할 예정이다. 남북한은 두만강지역개발계획(TRADP)과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서 얼굴을 맞댄채 경협과 영공개방을 논의하기도 했다. (주)대우가 투자한 민족산업총회사 남포공장이 지난 8월19일부터 가동에 들어갔다. 북한과의 교역도 일상화되고 있다. 북한은 종전에 볼수 없던 외자유치노력 등 부분개방을 시도하고 있다. 남북한 당국간에 대화가 사실상 전면 두절되고 있는가운데 진척되고 있는 이런 경제분야의 교류와 협력은 다른 어떤 분야보다 질긴 "남북을 잇는 동아줄"인 셈이다. 하지만 앞으로 경제교류및 협력의 속도는 거의 전적으로 북한의 대외개방속도와 폭, 그리고 무엇보다 대남정책방향에 좌우될 것으로 전문가들은 전망하고 있다. 이는 최근 북한의 대남도발로 경협이 동결되고 있는 예로도 입증된다. 북한지도부가 개방의 속도와 폭을 정하고 대남정책을 재정립하는데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하고 있다. 북한은 식량난 등 경제난으로 정책변화를 도모해야 할 필요도 느끼고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개방에 따른 몰락가능성을 극도로 경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이 이런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갈지 주목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