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창간32돌] 복지 : 성장의 그늘에 풍요를 심자

지난 30여년간의 지속적인 경제성장 덕분에 우리나라는 1인당 GNP(국민총생산) 1만달러시대를 맞게됐다. 또 선진국클럽이라는 OECD(경제협력개발기구)가입도 실현했다. 그러나 과연 우리의 삶의 질은 과거 100달러, 1000달러시대에 비해 10배,100배 나아졌을까. 이 질문에 긍정적으로 대닯할 수 있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소득 100달러시대보다 아이들 키우기도 더 힘들고 삶의 질은후진국이나 다름없다는 푸념을 하며 뉴질랜드 등으로의 이민을 꿈꾸는젊은 화이트칼라의 모습도 드물지않게 볼수 있다. 제성장의 성과로 절대빈곤층은 크게 줄어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전인구의 8%정도인 350만명정도는 건강취약이나자활의지부족 등으로 수준이하의 생활을 하는 극빈층이다. 이가운데 65세이상의 노쇠자나 18세미만의 아동, 정신.신체장애로 스스로 생계유지능력이 없어 생활보호대상으로 정부의 보조금을 받는 사람이 약 150만6,000명정도된다. 그러나 이들에 대한 보조금이라야 매달 1인당 10만7,000원수준이다. 자가소득을 포함해도 최저생계비에 턱없이 부족하다. 또다른 취약계층인 장애자들에 대한 사회적 지원 역시 미흡하다. 평균수명의 연장으로 고령화시대에 진입하고있으나 경제적으로 자립할 수 있는 노인은 극소수로 전체노인의 55%가 월수입 20만원미만이고 자녀의존비율이 53%에 달한다. 빈곤층이 아니라도 일반 국민들의 삶의 수준역시 물질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풍요롭지않다. 전국민의료보장시대라고는 하지만 여전히 의사1인당 인구수는 817명으로 독일의 333명, 프랑스의 350명, 미국의 420명에 크게 못미친다. 1병상당 인구수 역시 315명으로 일본(64명)과 독일(94명) 미국(214명)에 크게 뒤진다. 대학병원이라도 찾을라치면 3시간대기 3분진료는 예사이고 불친절한 의사와 간호사에게 질문이라도 하면 환자는 무안을 당하고 죄인이 된다. 그나마 큰도시에만 병원이 몰려있다. 농어촌인구는 전국민의 22.3%인데 의료인력의 6.5%만 농어촌에 있다. 가난하던 시절에는 폐결핵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이제는 고혈압 비만과 관련된 암이나 뇌혈관질환등으로 죽는 사람이 많고 아이들에게도 성인병이 나타난다. 비공식통계지만 갑작스런 심혈관질환이나 뇌혈관질환등으로 돌연사하는 40대남성의 사망률은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에 이르고있다. 마이카가 꿈이었던 시절이 불과 얼마전이었지만 자동차 1,000만대를 보유하게된 지금 우리나라의 교통사고사망률은 세계1위수준이다. 경제발전정책과 관련, 근로자들이 업무상 입는 재해를 보상해주는 산재보험은 지난 64년부터 도입됐지만 선진국사회복지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국민연금제도는 88년부터 부분적으로 시행됐고 고용보험제도는 95년에야 도입됐다. 의료보험은 77년부터 부분적으로 시행돼 89년 전국민을 대상으로 확대됐지만 의료보험급여기간도 제한돼있고 진료비가운데 보험으로 처리되는 비율도 낮으며 본인부담률도 높다. 국민연금은 현재 도시자영업자가 가입대상에서 제외돼있고 전업주부나 이혼한 여성에 대한 연금수급권이 확보돼있지않고 연금보험료가 낮다보니 급여수준도 낮아 노후대책수단으로는 부족하다. 뿐만 아니라 현재의 재정추계라면 2030년대 중반에는 재정이 고갈된다는 추산까지 나오고있어 연금제도에 대한 국민 신뢰도도 낮은 상태이다. GNP 1만달러시대에 어울리지않는 우리나라사회복지의 현주소는 결국 삶의 질을 높이는 정책에 대한 국민들의 요구분출을 낳고있다. 이에 따라 정부도 "성장과 효율"만을 최고 가치로 삼아왔던 종전 정책기조에서 최근들어 "복지와 형평"이라는 가치도 포용하는 방향으로 돌아서고 있다. 이와 관련, 정부는 내년도 일반회계예산안 가운데 보건복지분야 예산을 전년보다 19.9% 늘어난 2조8,415억원으로 잡았다. 이는 정부전체 일반회계예산의 증감률 12.8%를 웃도는 것이라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 그러나 여전히 전체예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은 4.19%수준이다. 미국의 경우 이 비율이 41%, 독일 67%, 스웨덴이 63%인것에 비교하면 턱없이 낮다. 심지어 태국 필리핀보다도 낮다. 2001년에는 우리나라의 1인당 GNP가 2만달러를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국민들의 소득수준이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삶의 양보다 질에 대한 요구가 높아지게 마련이다. 무엇보다도 평균수명 연장및 출산율저하로 급격히 노령화사회로 접어들고있어 노인부양에 대한 사회적부담이 크게 늘 전망이다. 또 이혼증가, 가족기능저하및 여성의 사회참여확대로 종전에 여성이 가정에서 담당했던 아동복지 가족복지등에 대한 사회적수요도 크게 늘 수 밖에 없다.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세계질서속에서 통일의 가능성에 대비, 한민족공동체로서 한국적인 선진복지체계의 구축이 시급한 과제로 떠오를 전망이다. 경제 선진성에 걸맞는 삶의 질 선진화를 위해 한국적 현실에 맞는 선진사회복지모형을 시급히 구축해야하는 시기를 맞고있는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