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신문 창간32돌] 다산경제학상 수상논문 .. 윤석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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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범 약력 37년 서울 출생 59년 연세대학교 상경대학 경제학과 졸업 64년 동대학원 경제학과 졸업(경제학 석사) 71년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경제학박사 연세대 상경대학장 한국통계학회 회장 연세대 상경대학교수(현) 금융통화운영위원회 위원(현) 주요논문 거시경제학 계량경제학 한국의 빈곤 새거시경제학===================================================================== 빈곤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빈곤은 상대적인 개념이다. 즉 두 사람의 소득이나 재산을 비교하면 둘 가운데 하나는 언제나 가난하기 때문이다. 한편 빈곤은 느끼는 것이므로 빈곤을 느끼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빈곤의 정도는 달라진다. 부유한 사람이 자신을 가난하다고 느끼는가 하면 가난한 사람이 오히려 넉넉하다고 믿는 경우가 없지 않다. 물론 이러한 현상은 사람들의 탐욕정도가 다른데서 그 원인을 발견할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탐욕의 크기 여부를 막론하고 빈곤도 느끼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이다. 현대 국가의 중요한 기능 가운데 하나는 국가가 가난한 사람들을 경제적으로 부조한다는 점이다. 빈곤을 국가가 구하기 위해서는 빈곤대상자를 찾아야 하고, 그 전에 어떤 사람이 가난한가를 정하는 기준이 있어야 한다. 즉 막연히 가난하다는 것보다 "어떤 상태"를 빈곤이라 부를지 정의하여야 하는 것이다. 빈곤에 대한 정의에 대해서는 경제학자들과 사회학자들 사이에 의견차이가 있다. 그러나 대체로 빈곤의 정의에 있어서는 소득과 재산이 많이 이용되고 있다. 따라서 객관적이고 또한 논리적으로 정해진 어떤 소득수준이 빈곤수준이라고 얻어지게 되면 흔히 이 소득수준을 빈곤선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빈곤선을 정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방법과 학설이 있다. 가난한 국가의 특징은 각 개인들의 소득이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이는 빈곤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의식주의 문제를 해결해야 함을 의미한다. 즉 살아남기위한 최소한의 열량을 유지하기 위하여 사람이 먹을수 있는 가장 싼 음식물과 추위를 가릴수 있는 가장 싼 옷과 가장 싼 집을 장만하는데 지출된 돈의 합계를 구하면 이것이 바로 최소한의 생계비가 되며 동시에 가장 기본적인 빈곤선의 개념이 된다. 이러한 빈곤선을 기본적인 생계비에 따른 빈곤선이라 부른다. 그러나 기본적인 생계비에 따른 빈곤선을 결정하는 것은 복잡한 계산절차와 그 국가의 고유한 식이구조를 고려해야 하므로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욱이 한 국가의 식이구조는 시간이 변함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이 점까지 고려한 빈곤선 결정은 더욱 어렵다. 생계비에 의존하지 않고 빈곤선을 구하는 방식으로는 제도적인 방법이 있다. 흔히 빈곤의 제도적 정의라고 불리는 이 개념은 기본적 생계비를 기초로 빈곤선을 계산하는데 따른 복합적인 문제를 피하기 위하여 빈곤을 다루는 정부기관이 의사결정절차에 따라 의견을 수집하고 정부 재정에서 빈곤구제에 지출할수 있는 자원 규모 등을 고려하여 결정되는 빈곤선을 의미한다. 어떤 국가이든 개인및 가계의 소득수준은 개개인 및 각 가계마다 그 크기가 다르다. 이와같이 한 국가나 또는 한 지역에서 각 개인 또는 가계가 일정기간동안 벌어들인 소득이 어떻게 그 크기에 따라 흩어져 있는가를 그림표를 만들면 흔히 불리는 소득분포를 얻을수 있다. 한 국가의 모든 가구별 소득을 나타내는 소득분포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의 특징을 갖는다. 첫째로 어떤 한 중간소득계층에 가장 많은 가구가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분포의 봉우리가 그 계층에서 가장 높다. 이는 곧 아주 가난한 가구는 수적으로 많지 않을 뿐만 아니라 아주 높은 소득을 벌어들이는 가구의 수도 상대적으로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째로 이렇게 생긴 봉우리는 가난한 소득계층쪽으로 향하여 불거져 나와 있기 때문에 높은 소득을 버는 사람보다 낮은 소득을 버는 사람이 항상 많다. 제도적으로 빈곤선을 정하는 방법은 그 사회의 소득분포를 그린 다음 이 분포에서 중위수를 찾아내고그 중위수의 3분의1 또는 2분의1 수준의 소득을 빈곤수준으로 삼는 방법을 말하는데 이는 미국 캐나다와 같은 국가에서 공식적으로 채택하는 방법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공식적으로 빈곤선이라는 것이 공포된 적은 없다. 그러나 정부가 극빈자구호의 기준으로 삼는 소득수준이 제도적 정의에 의한 빈곤선이라 할수 있다. 제도적으로 정의된 빈곤선은 합리적인 관료들의 의사결정 체계에 따른다면 별 문제되는 바가 없으나 우리나라와 같이 국가 예산구조에 맞추어 결정되는 때에는 비현실적인 빈곤선이 될 가능성이 높다. 제도적으로 빈곤선을 결정하는데는 관계 공무원만이 참여하지 않고 일반 시민들까지 참여시켜 빈곤선을 구할수 있다. 이 방법에 의한 빈곤선을 대표시민정의라 부르는데 이 빈곤선은 단순히 생존하는데 필요한 소득뿐만 아니라 경제사회가 발전하면서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소득까지도 포함한다. 오늘날의 경제이론 가운데 이른바 "상대소득가설"이란 소비이론에 의하면 현대인들의 소비형태는 자신의 소득뿐만 아니라 자신과 접촉하는 주위 사람들의 소비생활양식 또는 그들의 소득에 의하여서도 영향을 받는다. 이와 비슷하게 대표시민정의에 의한 빈곤선은 생존에 필요한 소득수준뿐만 아니라 현대사회의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들과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데에 필요한 소득수준까지도 빈곤선의 개념에 포함시킨 것이다. 사람이 살아남기 위한 빈곤수준을 절대적 빈곤이라고 부른다면 타인과 더불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빈곤수준은 상대적 빈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제사회에서는 극도로 가난한 몇 국가를 제외하고 상대적 빈곤선의 추정을 더 중요시하고 있다. 이와 같이 빈곤의 개념이 절대적인 개념뿐만 아니라 상대적 개념까지 포함하자 새로운 요인들이 빈곤선을 결정하는데 많이 첨가되었다. 한 집안이 벌어들이는 소득뿐만 아니라 생활의 질을 나타내는 유아사망률 수명 문맹률까지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하는 요소로 포함된 것이다. 또한 이들 기본적인 질적 생활지표에 다른 문화적인 측면들도 포함시켜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연간 외식횟수, 연간 문화시설 이용횟수 등도 포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주장에 의하면 빈곤은 단순히 소득이나 재산의 부족이 아니라 얼마나 정상적인 사회활동에서 소외되었나 하는 정도와 연관된 것이므로 이러한 측면들이 도외시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빈곤의 개념을 종합지수정의라고 부른다. 이와 같은 방법은 이론적으로는 아주 이상적이므로 좋은 개념의 빈곤선이 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추정하는데 있어 서로 성격과 단위가 상이한 변수들을 어떻게 통일하여 하나의 지수로 합하느냐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이러한 어려움 때문에 빈곤선을 여러가지 사회적인 질적 생활수준의 지표와 문화적 지표까지 포함하여 지수로 계산하는 데에는 문제가 많다. 그리고 이와 같이 추정된 경우가 많지 않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바와같이 빈곤은 객관적이고도 주관적으로 느끼는 생활상태이다. 주관적으로 느끼는 생활상태를 어떻게 객관적인 수준으로 바꾸어 놓느냐 하는 것이 빈곤을 다루는 많은 경제학자들의 관심거리이다. 이러한 사고방식에 따라 가난, 빈곤선 등과 같은 개념을 마치 상품에서 주는 만족도와 같이, 그러나 반대로 생활에서 오는 불만족도로 보면 어떨까 하는 입장이 대두되었고 경제학자들은 빈곤선을 결정하는데 주관적인 느낌을 포함시키게 되었다. 즉 여러 수준의 소득계층에 속하는 가계를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 보자. "댁에서는 얼마 정도의 소득이 있어야 빈곤을 모면하고 사실수 있습니까" 이 질문에 대하여 여러 가지의 대답이 나올 것이다. 그러나 대체로 소득이 낮을수록 낮게 대답하고,높을수록 높은 대답이 나온다. 또한 이러한 대답은 경험적으로 생계비 등 여러 가지 지출항목을 고려하여 이루어졌으므로 별도의 다른 계산을 요하지 않는다. 다만 아주 가난한 집안은 자신들의 현 소득보다 높은 수준의 소득이 있어야 겨우 살아갈수 있다고 대답하는 한편 아주 잘 사는 집안은 자신들의 소득보다 낮은 수준의 소득에서 겨우 살아갈수 있다는 대답을 한다. 그리고 이 사이에 현 소득과 빈곤소득이 일치하는 경우를 통계적으로 찾게 되면 그렇게 얻어지는 소득수준이 바로 빈곤선이 되고 이를 주관적 요소에 의한 빈곤선이라 부른다. 이렇게 얻어진 빈곤의 개념은 물론 상대적 빈곤이며 더욱 정밀하게 주관적인 판단을 빈곤개념에 설정, 반영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상기한 빈곤의 개념중에서 현실적으로 경제학자들에 의하여 가장 많이 지지되는 개념은 주관적 요소에 의한 빈곤선이다. 이는 개인들의 주관적 만족을 고려한 개념으로 효율성의 입지에서 가장 능률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현실적으로는 우리나라의 극빈자들에게 제공되는 생활보호혜택은 이러한 점을 무시하고 있다. 즉 가난한 사람들을 찾고 이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시혜를 베푸는 것이 아니라 이미 결정된 자원내에서 가난한 사람들을 지명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정은 정부측면에서는 국고의 낭비이며, 극빈자의 측면에서는 법에서 보호된 혜택을 영유하지 못하는 위험의 소지를 충분히 안고 있다. 앞으로 우리나라가 복지국가의 면모를 지향하려면 이러한 점은 조속히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