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환경 보전과 골프장 건설 .. 안혜숙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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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가을 산은 불타오르는 듯하다"고 감탄한 어느 유럽 환경학자의 말이 생각난다. 그는 유럽의 많은 산을 다 돌아봤어도 한국의 가을산처럼 오색물감을 풀어놓은 듯 아름다운 단풍의 정취는 느껴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이유인즉 유럽의 산은 대부분 침엽수로 이뤄져 있어 가을이 돼도 좀체 낙엽을 볼 수 없는데 반해 한국의 산에는 잡목들이 많아 단풍이 형형색색의 장관을 이룬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말에는 앞뒤 생각 않고 실시된 우리의 잘못된 조림정책을 꼬집는 "뼈"가 들어 있다. 우리나라 산에는 경제적 효용가치가 큰 수종이 그만큼 적다는 얘기다. 현재 우리나라 전국 어디든 산세가 수려하고 나무가 무성하게 자랄만한 곳에는 어김없이 골프장이나 별장, 러브호텔 등이 들어서 있다. 통계에 의하면 국내에서 운영되는 골프장은 100여곳이고, 공사중이거나 영업정지처분을 받아 일시 휴업중인 곳까지 합치면 200여군데나 된다고 한다. 이들 골프장이 차지하고 있는 면적만도 무려 2억평방m로 남한 전체면적의 0.2%에 해당돼 국토면적 대비로 따지면 우리나라 골프장 수는 세계 1위라는 것이다. 문제는 이 많은 골프장 건설로 인해 산이 허물어지고 나무가 잘려나갈 수밖에 없다는데 있다. 뿐만아니라 환경관계자들은 골프장측이 잔디를 관리하기 위해 맹독성 농약을 대량으로 살포하는 바람에 주변 계곡은 물론 지하수까지 오염되고 있다며 대책마련을 호소하고 있다. 최근 국립공원 가야산의 해인골프장 건설을 둘러싸고 고승 한분이 방장자리를 내놓았다. 그런가하면 조계종 총무원이 전국 50여 사찰이 환경권 침해를 받고 있다며 사찰환경 보존을 위한 전국법회를 여는 등 환경과 관련된 분쟁이 날로 확산되고 있다. 미국 등 서방국가에선 자연환원운동의 일환으로 골프장을 공원화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한다. 우리도 그들처럼 용기있는 행동을 보일 때 후손에게 쾌적한 자연환경을 물려줄 수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