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특별' 공화국 .. 정만호 <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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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먹혀들던 약도 자꾸 쓰면 안듣는다. 내성이 생겨서다. 결국엔 계속 단위가 높은 약을 써야 견딜 수 있게 된다. 끝내 마약으로 순간의 통증을 잊는 지경에 이르는게 그 말로다. 요즘 정부의 경제정책 처방을 보면 그렇다. 어디까지 가려고 이러나 싶을 정도다. 툭하면 "특별조치"다. 이젠 "보통"의 상식적인 처방으로 약발이 먹혀들지 않는 상황이 됐다는 반증이다. 그 단적인 사례가 "특별법"이다. 과학기술발전촉진이나 청소년보호, 음난폭력물규제쯤 되면 명분이라도 그럴듯하다. 한데 이정도가 아니다. 국제경기대회유치특별법, ASEM(아시아태평양정상회담)지원특별법,인천국제공항건설특별법, 관광숙박시설지원특별법, 공기업민영화특별법... 몇나라가 모여 체육대회를 하는데도 특별법이 있어야하고 관광지에 호텔을 많이 짓게하기 위해서도 특별법을 만들어야 한다는 요구다. 행정행위로 해결할 일까지 특별법이다. 이젠 너도나도 나서서 서울시특별법과 서울대특별법까지 말들어 달란다. 중앙정부가 하는 꼴을 보고 지방자치단체와 대학까지 손을 내밀었다. 그래서 요즘의 특별법은 일반법의 상위개념으로써의 특별법이 아니다. 아예 만들때부터 원초적으로 특별법이다. 물론 큰 일을 치르려면 이것저것 걸리는게 많다. 전후좌우 따지자면 시끄럽기만 하고 되는 일은 없게 마련이다. 어차피 역사를 일구자면 어느 한쪽의 희생은 감수해야 하는게 동서고금의 진리이고 보면 우선은 일이 되게 만드는게 순서다. 그러자면 특별법이라도 있어야 겠다는데 생각에 이르는게 인지상정이다. 한데 이렇게 "특별"한 수단을 써야한다는게 "보통"이 되버렸다는 것이 문제다. 허구한날 특단의 조치로 문제를 풀다보니 어지간한 수단으로는 되는 일이 없어졌다는 얘기다. 이젠 아예 문제가 생기기도 전에 잘 안될 것 같으면 특별조치로 가버리는게 세태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얘깃거리도 아니다. "특별"은 더이상 "특별"하지 않다. 보석도 모피도 아닌 전기곤로와 설탕, 17인치 텔레비젼에 "특별"소비세가 붙는다. "보통"소비세를 내라해도 납득이 안갈 판에 왜 "특별"이 붙어있는지 모를 일이다. 전화요금과 주민세엔 왜 내야하는지도 잘 모르는 농어촌"특별"세가 붙여 나온다. 맞벌이 부부에 대한 소득공제는 "특별"공제고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하는 재원은 언제나 "특별"자금이다. 정부제도 뿐이 아니다. 세상이 온통 "특별"한 것 뿐이다. 설렁탕도 "특"을 시켜야 고깃덩이라도 건진다. 그냥 설렁탕엔 정말 밥과 국수 뿐이다. 열차를 타도, 여관에 들어도 "특"자가 붙어 있어야 쓸만하다. 그리고 그 "특"자가 붙은 방이나 메뉴는 "보통"보다 더 많다. 큰 "대"자 붙이기 좋아하는 국민성이 말들어낸 풍속도로 웃어 넘기기엔 증상이 너무 심각하다. 호구를 채우기에 급급했던 과거의 열등에 대한 보상심리라거나,수식어의 인플레현상 쯤으로 볼 수 있는 수준을 넘긴건 이미 오래전이다. 이제 "특별"은 특별하게 신경을 썼다는 점을 강조하는 수식어로써의 기능을 상실했다. "특별"은 과거의 "보통"을 의미한다. 그만큼 이미 내성이 체질화됐다. 그 책임은 수도 서울을 세계에서 보기드문 "특별시"로 이름붙인 관료와 지도층에 따지지 않을 수 없다. 그냥 세금을 물리고 돈을 지원하면 그만인 일을 상습적으로 과대포장해 왔다. 대화로 안통하면 법을, 그것도 대단히 특별한 법을 만들어 밀어부쳐 온 것도 그들이다. 의사로 치자면 약만 먹으면 호전될 증상에 주사를 놓아 빨리 낳게한 악덕의사다. 무리수는 반드시 또다른 무리수를 동원해야 풀 수 있는게 세상이치다. 개발을 손쉽게 하기 위해 특별법을 쓰면 그다음엔 환경을 보호하기위해 특별법을 또 만들어야 한다. 이건 눈을 감고도 보이는 길이다. 질러가기 어려운 길은 돌아가는게 정도다. 실정이 어려우면 "특별"따위의 얄궂은 수사로 피해갈 일이 아니다. 솔직하게 털어놓고 이해를 구하는게 지도자의 덕목이다. "특"이 진정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는 세상이 다름아닌 선진국이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 "보통"이면 충분한 예우를 받는 나라가 살만한 나라라는 것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