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역사의 심판

일찌기 독일의 문호 J W 괴테는 진실과 허위, 확실과 불확실, 의문과 부인을 명확히 구별하는게 역사의 의무라 했다. 따라서 역사란 과거의 사실, 다시 말해 지나간 사건을 있었던 그대로 밝혀내는 것이 그 본령이다. 동양에서는 오랜 옛날에 춘추필법이라는 역사관이 생겨났다. 공자가 노나라의 사관이 기록해 놓은 궁정년대한에 그의 독자적인 역사의식과 가치관, 즉 명분과 인륜을 두 기둥으로 하는 정치이념을 대입시켜 필삭을 한 "춘추"라는 경전에서 비롯되었다. 군부를 시해하는 란신적자가 횡했던 혼란기에 명분과 인륜을 바로 잡고자 했던게 그 집필 동기였다. 뒷날 공자가 "후세에 나를 알아주는 자도 춘추뿐이고 나를 죄줄자도 춘추뿐"이라고 한 말에서 드러나듯이 괴테가 지적한 역사의 의무에 충실했던게 "춘추"가 아닌가 생각된다. 그러나 역사는 시간적으로 소멸된 과거의 사실을 기록하여 평가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묻혀진 진실을 속속들이 들춰낸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 아닐수 없다. 더구나 역사가 힘있는 자들의 편에 서거나 힘있는 자들에 대한 아첨으로 얼룩질 때에는 진실이 사라질수 밖에 없다. 패자에게 등을 돌리고 승자가 옳다고 한 지나간 역사의 우수한 실례에서도 그것은 인지된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모든 역사를 거짓말이라고까지 극언을 서슴지 않으면서 그 진실을 찾기에 골몰한다. 근간에 우리의 관심은 12.12와 5.18의 진실을 규명하는 재판에 쏠려 왔지만 그 당사자들이 생존해 있는데도 15~16년전의 진실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역사의 치부이자 취약점이다. 이번에는 백범 김구 선생의 암살범이었던 안두희가 오랜 세월동안 암살배후를 끝내 밝히지 않은채 피살되고 말았다. 안의 살해범은 "역사의 심판"을 위해 그를 죽였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역사의 심판이란 원래 어떤 사실이 장차 역사서에 어떻게 기록되고 역사가들의 서술에서 어떠한 판정을 받을 것인가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것은 물론 역사의 진실을 바탕으로 한 것이어야 한다. 그렇다면 백범암살의 배후를 밝혀내지 못한 마당에 안을 살해한 것은 "역사의 심판"에 역행되는 행위였다고 볼 수밖에 없다. 경우가 다르지만 존 F 케네디의 암살범인 오스월드가 살해됨으로써 그 배후가 영영 묻혀져 버렸음을 상기하게 된다. 광후 직후 혼란기 역사의 진실이 빛을 잃게 되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