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교황과 다윈의 악수

세계의 각 문화권에 전해지고 있는 창조신화는 무척 다양하다. 이집트나 인도의 창조신화에서는 미지의 원초적 혼돈에서 자생적으로 생물이 생겨났다고 한다. 노자도 도라는 것을 내세워 그것의 자발적인 움직임으로 만물이 생겨났다고 했다. 그러나 이밖에 많은 창조신화에서는 만물이 전지전능한 단 하나의 창조자에 의해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타칼로아신은 아득히 먼 우주에 살았다. 그는 만물을 창조했다. 그는 홀로 있었고 하늘도 땅도 없었다. 홀로 우주에 떠돌아 다녔다" 이렇게 시작되는 사모아의 창조신화는 흡사 기독교의 성서와 비슷한 내용이다. 옛 사람들은 전지전능한 창조신들을 굳게 믿었다. 창조신들은 인간이 자연의 재해로 받은 상처와 질병의 고통을 씻어주고 복을 주며 희망을 불어넣는 구실을 했다. 물론 기독교라는 종교도 이런면에서 예외일수는 없다. 근 2,000년동안 인간과 하느님과의 특별하고도 직접적인 관계위에 쌓아올린 기독교 윤리체계를 통째로 뒤엎은 것은 찰스 다윈이었다. 그는 인간이 하느님의 손으로 직접 창조되지 않고 하위 유기체로부터 진화했다고 주장하여 기독교도들을 혼란에 빠지게 했다. 1858년 다윈의 "종의 기원"이 나왔을 때 친구인 월버포스목사의 부인이 인간의 조상이 원숭이었다는데 놀라 "오, 하느님 맙소사"라고 외쳤다는 일화는 당시 기독교인들이 받은 충격이 얼마나 큰 것이었나를 그대로 느끼게 한다. 그러나 다윈의 말은 옳았다. 사실상 유인원과 인류는 거의 형제자매지간이나 다름없다. 미국의 유전공학자 모리스 굿맨은 인류와 유인원의 유전인자를 분석한 결과 차이점이 1%에 불과하다고 밝힌 바 있다. 또 진화가 10억년전에 시작됐다는 학설도 나왔다. 교황 요한 바오로2세가 최근 "다윈의 진화론은 논리적으로 옳으며 가톨릭교의에 모순되지 않는다"고 진화론을 처음 인정했다고 한다. 교황이 다윈과 130여년만에 화해한 셈이다. 물론 인간의 육체는 진화한다해도 영혼은 신에 의해 창조됐다는 단서가 붙어있기는 하다. 오늘날 과학은 인체에 잠재하는 모든 가능성을 최대한 발달시키는 힘을 인간에게 부여했다. 멀지않아 170세까지 장수할수 있다고도 한다. 그러나 맹목적인 과학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정신을 도외시할 때, 인간은 오히려 퇴화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겠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0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