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황 일본증시] (3) 은행/투신 등 주식투자기능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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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기댈 곳이라고는 연금밖에 없다" 생보 은행 투신 등 기관투자가들이 썰물처럼 떠나고 마지막으로 믿었던 외국인마저 가부토초를 외면하면서 일본 증시의 절박함을 나타내는 한마디다. 자산 220조엔, 연간 여유자금 4조엔. 연금만이 주식매입에 나서 시장의 안전판 역할을 할 유일한 구세주라는 뜻이다. 연금은 이런 "희망"을 저버리지 않고 주식매입을 늘려가고 있다. 운용수익률 제고라는 내적 요구와 자산운용 규제완화라는 외적 원조가 주식매입을 뒷받침하고 있다. 우선 수익률 제고다. 연금은 그동안 생보나 투신 등에 자산을 맡기고 연5.5%의 수익률을 보장받아 왔다. 그러나 주가하락 등으로 기관투자가들이 이같은 수익률을 내는데 허덕이면서 마찰이 잦아지고 있다. 연금이 운용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운용처를 투자고문으로 옮기거나 직접 주식투자에 나서고 있는 직접적인 이유다. 규제완화가 이런 움직임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동안 연금자산 운용에 대해선 "5.3.2" 법칙이 엄격하게 적용돼 왔다. 공사채 등 무위험 자산에 운용재산의 50%이상을, 주식에는 30%미만을,부동산에는 20%미만을 투자해야 한다는게 그것. 그러나 올해부터 일부 연금에 대해 30%이상의 주식투자가 허용됐다. 앞으로는 이런 대상이 확대되고 5.3.2 법칙 자체가 없어질 전망이다. 가부토초의 연금 의존도가 점차 높아질 거라는 얘기다. 연금이 기존 기관투자가를 제치고 신데렐라로 떠오르고 있는 것은 기존기관들이 주식투자기능을 거의 상실했기 때문이다. 연금의 최대 운용줄이었던 생명보험은 주식매입 여력이 말라붙었다. 보장수익률을 밑도는 연금자산에 대해 수익률을 보장하기 위해 고유계정에 있는 평가이익 주식을 매각한 탓이다. 고유계정에서 이익이 난 종목들을 내다 팔면서 고유계정의 평가이익이 줄어들고 리스크가 높은 주식투자를 꺼릴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또 버블기에 사두었던 달러화표시 채권들이 엔고로 인해 거액의 평가손을 낸 것도 몸을 무겁게 한 요인이 되고 있다. 은행은 평가익 감소와 부실채권이라는 연타를 맞았다. 40조엔에 달하는 부실채권은 은행경영에 멍에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곧바로 종자돈 역할을 하던 후쿠미에키를 축소시켰으며 주식투자를 불가능하게 만들었다. 평가익이 많을 경우 위험자산인 주식투자를 할수 있으나 평가익이 줄어들면서 주식투자를 할수 없게 된 것이다. 여기에는 국제결제은행(BIS)의 자기자본비율 규제도 한몫하고 있다. 생보와 은행의 주식투자여력 상실은 일본경영의 구조적 취약성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 의미도 있다. 평가익이 있을 때에는 모든 것을 할수 있으나 그렇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수 없는 구조다. "일본 기관투자가들은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였다는 사실이 여실이 드러난 셈이다"(시모무라 다이이치투자고문 사장). 투신은 투자자 신뢰상실이라는 혹이 하나 더 붙는다. 투신사는 거의 대부분 증권의 자회사다. 모회사의 이익을 위해 투자자를 "희생"시키는 경우가 많다는 비판을 받는다. 모회사의 수수료 수입을 위해 필요하지도 않은 상품을 파는게 대표적인 예. 결과적으로 수익률이 낮게 되고 투자자들이 신뢰를 잃고 떠나가게 마련이다. 투자자들의 해약이 늘어나고 투신은 주식을 사기보다는 보유주식을 내다팔아야 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투신은 이런 수렁에서 벗어나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고 있다. 증권사를 통하지 않는 직판체제를 갖추고 수수료를 낮추며 은행에서도 투신상품을 팔수 있게 제휴하고 있다. 펀드매니저에 대해 성과급제도를 도입, 운용수익률을 높이고 투신사 운용성적을 평가하는 회사를 설립하는 방안도 추진중이다. 이와 함께 노무라증권이 미국의 피렐리티투신상품을 파는 등 계열관계를 뛰어넘어 다른 회사 상품을 파는 경우도 생기고 있다. 한마디로 투신사 입장에서가 아니라 투자자 입장에서 제도개편을 추진하고있다는 말이다. 차와 포를 모두 떼인 기관투자가와 깃털을 떼고 날개짓을 하는 연금. 가부토초의 우울한 앞날을 보여주는 조연들이다. 연금의 화려한 비상과 기존 기관들의 빠른 재기가 일본증시에 희망을 불어넣는 필요조건임에 틀림없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