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카슈랑스 시대다] (4) '그래도 지구는 돈다'

갈릴레오 갈릴레이. 국내 보험업계에서 방카슈랑스 주창론자들은 중세기로 치면 갈릴레오들이다. 공개석상에서 은행과의 연합을 주장했다가는 아직은 이단자로 몰린다. 갈릴레오는 16세기 교황청의 이단심문소에서 마지 못해 천동설을 인정했다. 하지만 말년엔 "그래도 지구는 돈다"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한국생명 한문선 전무. 생보업계의 일본통. 그는 지금 한국보험업계의 갈릴레오다. 한전무는 지난 여름 일본보험신보란 전문지를 보다가 번뜩이는 아이디어를하나 얻었다. 야스다생명 등 8개 생보사와 후지은행이 연계, 단체신용 생명보험이란 새 상품을 내놨다는 기사였다. 내용은 이렇다. "후지은행이 중소기업 사장에게 대출을 한다. 사장의 돌연한 사망에 대비, 생명보험에 든다. 사장이 대출만기전에 숨지면 생명보험금으로 대출금을 갚는다" 돈빌리는 사장 입장에서야 기분이 나쁘겠지만 종업원이나 유족이 빚에 쪼들릴 것을 생각하면 절묘한 대비책이다. 한전무의 밀명을 받은 상품개발과(과장 백만기)는 극비리에 주택은행과 접선했다. 국민은행 다음으로 지점수가 많은(430개) 주택은행은 마침 눈에 불을 켜고방안을 물색하고 있었다. 96년 9월12일. 한국의 월스트리트인 여의도. 신명호 주택은행장과 박현국 한국생명사장은 포괄적인 실무자들이 토론을거듭한 끝에 작성해온 포괄적인 업무제휴 서류에 사인했다. 금융후진국인 우리나라에서 선언적이나마 방카슈랑스 시대가 개막된 것이다. 주택은행과 한국생명은 오는 12월까지는 야스다생명과 같은 단체신용생명보험을 처녀작으로 내놓을 예정이다. 그러나 ''작품''의 탄생을 앞두고 켕기는 구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더욱이 보험감독원이 최근 C은행을 통해 주택화재보험을 불법으로 위탁모집한뒤 자사 대리점에서 모집한 것처럼 처리한 삼성화재에 대해 관련자 문택처분을 내린 것도 찜찜한 구석이다. 당국이 괜한 딴지를 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왕이면 관련법규가 미리미리 손질되길 바랄 뿐이다. 재경원 소일섭 규제완화기획단장은 "보험 은행 증권의 3대 축을 유지하되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자회사를 통해 상호진출을 허용한다. 간단한 부수업무부터 푼다"고 조심스럽게 말하고 있다. "재경원 메커니즘상 칼자루는 금융정책실이 쥐고 있다". 과천의 헛기침까지 귀를 쫑긋해야 하는 금융계 사람들의 얘기다. 까뒤집으면 방카슈랑스는 은행 보험간의 파이쟁탈전. 싸움은 명분이 있어야 이긴다. "소비자에게 좋은 제도가 최고다". 미국의 대표적인 금융겸업 주창론자인 앤소니 손더스(Anthony Saunders.미)의 한마디 훈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2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