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는 복합계시대] (3) '정보화 사회의 틀'

머레이 겔만=69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쿼크물리학 창시자) 케네스 애로=72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일반경제의 균형이론과 복지이론) 필립 앤더슨=77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성체 및 무질서계의 전자구조연구) 세계가 공인하는 "노벨"훈장을 달고 있는 미국학계의 최고 권위자들. 이들이 지난 84년 뉴멕시코주 허름한 수도원에 모였다. "역적모의"를 위해서다. 자연과 사회구조가 기본적으로 안정적이라는 기존 학설에 정면 도전하는 "반역"을 위한 모의다. 모의는 곧 실행에 옮겨졌다. 수도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언덕 한켠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동네이름을 딴 산타페연구소. 이곳에서 불가사의하고 예측불가능한 현상들 사이의 공통점을 찾기 시작했다. 각 분야에서 두각을 보이는 "객원연구원"들을 초청, 일정기간 연구를 함께하기도 했다. 복합계의 껍질을 벗겨낸 사람은 브라이언 아더 스탠포드대교수. 87년 객원연구원으로 합류할 당시엔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가 복합계에 관심을 보인 것은 우연히 읽은 "분자생물학의 여명기"(홀리스저드슨 저)란 책 때문. "유전자의 작은 변이가 생물전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수 있으며 생물의세계에서는 이런 작은 우연들이 모여 전혀 새롭고 복잡한 패턴을 만들어낸다"는 내용이 그를 자극했다. 아더교수는 다양한 연구를 통해 물리 화학의 세계는 물론 경제활동에서도 이같은 현상이 똑같이 적용된다는 것을 찾아냈다. 복합계(complex system)이론이 완성된 것이다. 새 이론의 탄생은 무명의 산타페연구소를 일약 21세기 과학혁명의 메카로 떠오르게끔 했다. 미국에서 복합계연구가 한창이던 86년. 일본에서도 "반역"을 꿈꾸는 무리들이 있었다. 쓰다 이치로 홋카이도대교수, 가네코 구니히코 도쿄대교수 등이다. "프론티어 전자궤도론"으로 노벨화학상(81년)을 받은 후쿠오카 겐이치기초화학연구소장도 동참했다. "자연은 어느정도 복합성을 가지고 있다. 과학은 그 바탕위에 성립됐다.이제 복합성을 해명하는 것이 과제다..."라는 말과 함께. 선두의 깃발이 들리자 복합계연구는 "붐"으로 이어졌다. 교토대 기초연구소는 물리학자들을 중심으로 1백여명의 학자들이 참여한 "복합계연구회"를 결성했다. 심포지엄과 세미나가 수시로 열렸다. 서점에는 이미 셀 수 없을 정도의 복합계 관련서적들로 꽉차 있다. 인공생명과 "티에라"라는 자기증식소프트웨어연구로 유명한 간사이(관서)산.학연구단지 ATR(국제전기통신기초기술연구소)는 가장 손꼽히는 복합계 연구현장일 정도다. 미국과 일본.세계경제의 양대 산맥인 이 두나라가 복합계 연구에 매달리는이유는 뭘까. 한마디로 시대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대량생산위주의 산업화시대에서 고도로 첨단화된 정보화시대로.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신중심의 중세에서 인간중심의 근대로 이끌었다면 "복합계"는 고도 정보화사회의 이론틀을 제시하는 "조용한 혁명"으로 평가될수 있다. 혁명에 동참하지 못하면 살아남기 힘든.. 물론 모든 나라가 미국 일본과 같을 수는 없다. 경제수준과 관행이 다른 탓이다. 예컨대 미국에서는 차를 살때 값을 깍는 것이 당연하지만 다른 물건의 가격은 흥정하지 않는다. 유럽에서는 카펫에 대해서는 값을 깍지만 차값은 흥정하지 않는다. 복합계의 핵심이론인 수확체증법칙의 적용방식도 다를수 있다는 지적이다. 정보화시대의 이론혁명. 우리나라는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1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