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항려지의

"중매쟁이 노인더러 저승관리에게 부탁하여/내세에는 우리 부부 바꾸어 태어나세./내가 죽고 천리밖에 당신이 살아 있어/당신이 나의 이 슬픔 알게 하고 싶구려" 유배지인 제주도에서 아내가 죽었다는 비보를 접한 추사 김정희는 "배소친처상"이란 시 한 수를 지어 천리 밖에서 죽은 아내를 기했다. 내세에는 서로 뒤바뀌어 태어나 지금의 슬픔을 아내에게 알리고 싶다는 절절한 심정을 토로로한 대목에 이르면 이런 경지에 이른 것이 바로 청고한 절조를 지녔던 선비들의 "부부애"였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전통사회에서 부부간에 존비의 질서가 있었던 것은 결코 아니다. "소학"에 나오는 옛 혼례식의 절차에 따르면 초례를 할때 아버지는 아들에게 "가서 네 내조자를 맞이하여 우리 가문의 일을 계승하되 힘써 선도하기를 경으로써 하여, 네 어머니를 잇게하라"고 훈계한다. 또 "복기"에는 시부모에게 폐백을 올리는 것은 "신으로써 고하는 것"이라고 규정해 놓았다. 결국 부부란 "경"과 "신"으로 맺어진 동등한 인간이다. 내외간의 정을 "항려지의"라 하는 것도 동등한 "짝"으로서의 돈독한 정이란 의미에서 생긴 말이다. 부부간의 "경"과 "신"이 점차 깨어져 가고 있는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과거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일이 속출하고 있다. 얼마전만해도 아내가 정부와 짜고 남편을 살해하는 일이 있었는가 하면 남편이 아내를 16층에서 떨어뜨려 죽인 믿기지 않는 일도 일어났다. 또 최근 안경사협회로비 사건으로 구속된 전 보건복지부장관부인의 경우는 과연 정치가의 부부 사이는 그럴수도 있는 것일까 하는 의문을 자아내고 있다. 물론 정치적인 성격이 짙은 것도 사실이지만 어떤 정당에서 그 부인의 석방까지 촉구하고 나섰다고 한다. 항간에 떠도는 소문처럼 "나는 몰랐다"는 것이 발뺌이 될수 있는 것인지 생각하면 할 수록 의심스러울 뿐이다. 세종때 좌찬성 이맹균의 처가 집안의 계집종을 죽여 법망에 걸려들었다. 이 때 이명균은 처를 감사려들다가 오히려 죄를 얻어 황해도로 귀양을 가야했다. "가도를 바로잡지 못했다"는 것이 세종의 판결이었다. 그후 그는 유배지에서 돌아오던 길목에서 객사했다. 부부간의 정을 끝까지 지킨 고전적 사례인 셈이다. 진실은 언젠가는 꼭 밝혀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걱정스러운 것은 부부간에 "경"과 "신"이 여지없이 깨어져 가고 있는 현실을 보고만 있는 것이 안타깝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