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26일자) 마닐라 이후의 대북한 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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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태 경제협력체(APEC)의 마닐라 각료회의,수비크 정상회의가 진행되는 어제까지 며칠 우리의 관심은 중심의제인 무역 투자 자유화 진전에 쏠렸다. 그러나 잠수함사건 이후를 놓고 관련국 정상들이 어떤 방향으로 키를 잡을 것이냐에 더 큰 신경이 쏠린 것은 사실이다. 문제의 한반도 4자회담과 같은 숫자의 4자회담은 예정대로 마닐라에서 열렸다. 한미일중의 연쇄 정상회담이다. 그러나 그 결과는 한마디로 찬반을 표하기 힘든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긴다. 우선 여러 정상대화 가운데 초첨이라 할 한미정상 합의가 의외적 변전을 보인 점을 들수 있고 다음 중국측의 소극적 반응에 주목이 간다. 반경이 좁은 일본은 오히려 대통령 방일초청을 포함, 하시모토의 적극자세로 묵시적으로 나마 공감을 표시했다. 첫째, 깊은 통찰을 요하는 것은 한미정상의 공동발표다. 잠수함 이후 계속돼오던 평행선이 문맥상 합치는 됐으되 그 과정에 심한 우여곡절의 흔적이 있다. 미측의 강한 압력, 그에 이끌린 서울측의 무력감이 서려 있다. 공동발표의 핵심은 한국이 4자회담 개최와 경수로 지원재개에 선행조건으로 북한에 요구해온 잠수함침투 시인 및 공식사과 순간 무력화된것이다. 유난히 짧은 발표문에서 군살을 빼면 상황을 역전시킨 대목은 다음 두 곳이다. 앞의 부분은(한반도의 제반상황으로 볼때 4자회담의 필요성이 (잠수함보다)더 중요하다)는 표현. 뒷귀절은 (도발)재발방지를 위해 향후 한-미가 북한에 촉구하는 것은 "수락할수 있는 조치"로 사과는 간데 없다. 2개월여 일관한 정부의 입지는 용두사미처럼 비길대 없이 허망하지 않은가. 다음 한-중 개별회담에서 강택민주석이 북한의 대남 잠수함 침투사건에 관한 김대통령의 설명에 중립입장만 반복했을뿐 명시적 동의를 회피한 사실을 우리는 깊이 음미하지 않으면 안된다. 중-조간 오랜 유대나 동일노선 견지의 측면보다 한-중간 경협-통상관계 심화에 도취, 남북에 대해 최소한 중국측은 공정한 태도만은 취하리라는 한국측의 기대가 타당한가, 지나치게 단순한가를 냉철히 반성하지 않으면 안된다. 기대를 부풀려온 마닐라 회동은 끝났다. 이것이 4자회담 경수로건설 식량원조 나진-선봉투자등 한반도 현안문제에 어떤 영향을 줄것인가를 예측하기란 아직 이르다. 뭣보다 한-미발표 대로만 가려해도 북한의 "수락할수 있는 조치"가 먼저 나와야 한다. 그에 대한 기대를 얼만큼으로 조절해야 옳은가. 그러나 그에 앞서 한국 스스로,한미양측이 짚고 넘어가야할 일들이 한두가지 아니다. 먼저 잠수함 이후 정부가 최강수 배수진을 폄에 있어 북한과 미국,그들과의 삼각관계를 과연 얼만큼 과학적으로 분석했는지 자문해야 한다. 그 과정서 전문가는 무시된 채 정치논리가 좌우하진 않았는가, 여론은 제대로 수집, 반영됐는가를 냉정히 물어야 한다. 이제라도 중요한 것은 억지쓴 끝에 득을 봤다고 착각할 평양측으로 하여금 맛들이지 않도록 당국이 들뜨지 말고 갈아앉아 현명해지는 길 뿐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