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동상이몽 증시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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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자한 돈으로 주식을 산다고요. 아시다시피 지금 주식을 살 형편이 됩니까. 당연히 차입금을 먼저 갚아야죠" 재정경제원이 투자신탁회사의 주식매수기반을 확충한다며 25일 한국 대한 국민 등 3대투신의 1백%증자를 허용하겠다고 발표하자 투신업계의 첫 반응은 회의적이었다. 투신사들은 증자를 통해 차입금을 줄이고 경영정상화를 꾀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었으나 정부에선 주식을 매입토록 "지시"한 탓이다. 재경원이 이날 3대 투신의 증자허용을 "증시안정책"이라는 카드로 사용한것은 물론 주가폭락을 우려해서였다. 빚더미에 눌린 투신사에게 주식매입을 권유하기 위해선 이 방법밖엔 없었던 것이다. "투신사가 지금까지 차입금을 줄인 적이 없다. 당연히 증자한 돈으로 주식을 살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게 재경원관계자의 주장이다. 투신업계와 정부가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있었던 셈이다. 사실 3대투신의 증자는 두달전부터 업계에서 추진해온 일이었다. 차입금으로 인한 지급이자부담을 줄여 경영정상화를 꾀해보자는 의도였다. 현재 3대투신의 차입금규모는 7조원수준. 이에따라 영업활동을 통해 이익을 내고도 지급이자부담때문에 적자를 면치 못하는 악순환이 되풀이돼온게 투신사의 현실이었다. 그래서 투신사들은 차입금축소를 경영의 최우선목표로 내걸었고 최근에는 차입금증가요인이 되는 미매각수익증권도 줄이고 있다. 투신사 증자에 따른 경영정상화효과는 크다. 그에따라 투신사가 기관투자가로서 증시안전판역할을 할 수 있게 되는 발판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당장 증시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경영이 정상화돼 주식을 사게되기 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 이번 증시대책은 단기간내에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게 옳다. 자칫 잘못하다간 과거처럼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증시와 투신사가 같이 무너질 수도 있기 때문이다. 최명수 (한국경제신문 1996년 11월 27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