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이상한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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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루타크 영웅전"에는 혹한을 묘사한 이런 구절이 나온다. 어떤 도시에서는 추위가 너무 심해 말을 하자마자 말이 얼어붙어 얼마쯤 시간이 지난 뒤 그 말이 녹아야 들을수 있고 또 겨울에 말하면 다음해 여름에 듣게 된다는 것이다. 아마 러시아 동부에 있는 도시들 정도는 추위가 극심한 곳이었던 모양이다. 한겨울에 베르호얀스크는 섭씨 영하 68도.오이먀콘은 영하 71도까지 내려간다. 그곳에 살았던 러시아의 한 시인은 그 추위를 이렇게 묘사했다. "오이먀콘/이곳에서는 태양이 얼어버린다/눈물로 일순간에 파편처럼 되어버린다/호흡도 졸졸 소리를 낸다" 그런데도 그곳에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도시가 이루어져 있다. 베르호얀스크의 자동차 유리창은 그중 가옥이나 호텔의 유리창은 3중으로 되어 추위를 막아 준다. 영하 50도로 기온이 내려가는 날에는 초등학교 4학년까지의 어린이들은 등교를 하지 않으나 그밖의 사람들의 사회활동은 계속된다. 영하 40도 추위에도 거리에서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걷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수 있다. 베르호얀스크의 연중 기온차는 세계의에서 가장 크다. 영하 68도에서 37도까지로, 105도의 기온차를 보인다. 사계절의 변화가 극심하다. 그러한 추위와 연중 기온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에 적응하는 체질을 갖고 또 그에 대응하는 환경을 만들고 생활을 해나가는데 조금도 불편이나 장애를 느까지 않는다. 인간이 자연의 극한상황을 극복한 일면을 그에서 엿보게 된다. 반면에 연중기온차가 반정도에 불과한 하눅의 경우에는 영하 20도의 추위에도 정상적인 인간활동이 어려운 한계에 부딛치게 된다. 엊그제 내륙분지인 전북 장수의 기온이 전국의 다른지방 (내륙분지 지역 제외)과는 정반대로 영하 22도까지 떨어지는 이상한파가 몰려와 한계기온을 넘어섰다고 해서 화제거리가 되었다. 1919년 1월23~24일 미국 몬타나주의 브라우딩에서 기온이 7도에서 영하 49도로 내려가 56도의 차를 보였던 기록에 비춰본다면 장수의 한파는 충격적인 것이 못된다. 더우기 그 원인이 대륙성 고기압의 찬공기가 분지를 빠져 나가지 못하고 머문데다 많은 눈이 땅에 쌓인뒤 얼어붙어 햇볕을 평소보다 많이 반사시켜 지표온도가 올라가지 못한 것으로 밝혀져 다행이다. 인재가 가져오는 이상기후변화가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