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루몽] (599) 제12부 낙엽 진 뜨락에 석양빛 비끼고 (95)

집으로 돌아온 희봉이 밤새도록 통 잠을 이루지 못했다. 진가경이 말한 그 횡래지액이라는 것이 뭔지 불안해서 견딜 수 없었다. 진가경이 거기에 대해 말할 때 좀더 따져물을걸 후회가 되기도 하였다. 더 나아가 잠깐이라도 좋으니 진가경의 혼령이 다시 자기 앞에 나타났으면 하고 바라기까지 하였다. 그러나 서운한 기색으로 돌아간 진가경의 혼령은 새벽이 다 되도록 희봉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 희봉은 밤새도록 머리가 깨어질 정도로 아파 신음소리를 삼켜야만 하였다. 오경 무렵, 희봉의 남편 가련이 먼저 일어나 총리내정도검점 내시를 만나보러 가려고 의관을 차려입었다. 그리고는 책상 위에 놓여 있는 관보를 집어들어 잠시 읽어보았다. 관보에는 운남성 절도사 왕충의 장계와 소주자사 이효의 장계가 실려 있었다. 왕충의 장계는 화승총과 화약을 몰래 숨겨가지고 변방을 빠져 나가려던 무리 십팔 명을 체포하였는데, 그 범인들의 두목인 포음은 태사 진국공 가화의 가신이라는 내용이었다. 이효의 장계는, 상전이 노복을 제멋대로 내버려두었기 때문에 그 노복이 상전의 세력을 등에 업고 군민을 능욕하고 수절하는 과부를 겁탈하려다가 뜻을 이루지 못하게 되자 과부를 죽인 사건을 보고하면서 범인을 체포함과 아울러 상전도 함께 고발하였다는 내용이었다. 그런데 상전은 세습 삼등직함 가범이요, 범인은 가범의 노복인 시복이라는 자였다. 두 사건 다 가씨 가문과 관련이 있어 가련은 기분이 좀 언짢았지만,애써 표정을 밝게 하며 총리내정도검점 내시를 만나러 갔다. 하지만 청탁할 사안이 있어 찾아간 그 일은 내시가 새벽일찍 궁정으로 들어가는 바람에 도로에 그치고 말았다. 드디어 탐춘이 혼수를 장만하여 남방으로 떠나게 되었다. 녕국부와 영국부 집안 사람들이 다 모여 탐춘을 눈물로 전송하였다. 가진이 아내 우씨도 탐춘을 전송하고 영국부에서 녕국부로 돌아오려고 하였다. 그런데 날이 이미 저물어 수레를 몰고 어쩌고 하면 소란스러워질 것 같아시녀들과 함께 걸어서 대관원 뜰을 거쳐 샛문을 이용하여 녕국부로 돌아왔다. 샛문을 지날 무렵, 우씨는 어스름이 내리고 있는 대관원을 다시금 흘끗 뒤돌아보다가 온몸에 소름이 쫙 돋는 것을 느꼈다. 마른 잡풀들이 우거져 있는 스산한 대관원 구석구석에서 상스럽지 못한 요사스런 기운이 우씨를 와락 덮치는 기분이었다. 그날 집으로 돌아온 우씨는 별 이유도 없이 시름시름 앓다가 몸져 눕고 말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4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