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증시 안정책'과 약효..장하성 <고려대 교수/경영학>
입력
수정
오랜 기대 끝에 소문으로 나돌던 중시 부양책이 최근 발표됐다. 주요 내용은 고객예탁금의 이용요율과 공모주예치금의 이자율을 인상한다는 것, 만기가 도래하는 통안채를 조기상환하여 일시적이나마 주식매입여력을 확대하겠다는 것, 그리고 신용융자의 기간과 이자율을 자율화하겠다는 것 등이다. 주가반등을 기다리며 "주가부양책"을 바라던 투자자들에게는 기대에 크게 못 미치는 내용이다. 따라서 증시부양책이 주가를 반등시키기 보다는 기대심리를 무산시켜 오히려 일시적으로 주가하락을 가져올 것이다. 그러나 현재와 같은 경제상황에서 발권력을 동원해 주식매입을 한다하더라도 주가를 끌어올릴 수 있는 묘방이 없다는 것을 "주가부양책"을바라는 투자자들 자신이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때문에 "주가부양책"에 대한 기대심리가 무산된 현시점에서는 경제상황이 악화되지 않는한 더 이상의 장기적인 주가하락이 없을 것으로 기대해 볼만도 하다. 이번에 발표된 증시부양책은 시장에 직접 개입, 인위적으로 주가를 떠바치는 식의 정책을 펴지 않고 시장원리에 충실하겠다는 정책당국의 의지를 보여주었다는 점에서는 평가할만 하다. 정부의 발표에는 금리안정을 유도하겟다는 것, 배당성향을 높히도록 유도하겠다는 것, 그리고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활성화하겠다는 등의 조치가 포함돼 있다. 이런 조치는 주식수요확대와 근본적으로 직결돼 있다는 점에서 잘 설정된 정책방향이다. 그러나 이런 조치들이 안정적인 주식수요를 확대하기 위한 근본적인 제도의 개선과 금리안정과 같은 경제기조의 전환을 위한 정부의 구체적인 정책과 의지를 담고있지 않은 선언적인 것에 불과한 점이 크게 실망스럽다. 실효성 있는 정책이 되기 위한 근본적인 조치들이 뒤따라야 할 것이다. 첫째 금리안정화 정책과 관련된 문제이다. 금리가 하락하면 주식시장은 반드시 살아난다. 그러나 국민경제 운용의 요체라 할 수 있는 금리정책이 증시정책의 일부가 될 수는 없다. 정부는 불과 2개여월 전에 국가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금리를 내리겠다고 발표한 바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장금리는 오히려 그때보다 올랐다. 자금시장의 수요 공급 상황을 무시하고 지급준비율을 낮추고 은행들에게 대출금리를 낮추도록 강요한 일과성 정책이었기 때문에 결과는 반대로 나타난 것이다. 금리는 인위적으로 낮출 수 없다. 물가안정과 자금수급구조의 개선과 같은 근본적인 정책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증시부양을 위해서가 아니라 경기회복과 국가경쟁력 강화를 위해서 구체적인 물가안정책을 제시하고 이의 실천의지를 국민들에게 분명하게 보여줘야 한다. 그렇게 하면 증시는 자동적으로 살아나게 되는 것이다. 자금시장의 수급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 수요측면에서는 무엇보다도 만성적인 초과자금수요의 원인이 되고 있는 기업들의 재무구조를 개선하는 정책이 제시돼야 한다. 그리고 공급측면에서는 장기회사채 발행과 채권시장의 개방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 안정적인 자금조달이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둘째 배당성향을 높히도록 유도하겠다는 정책과 관련된 문제이다. 이는 배당수익이 실질적으로 투자목적이 될 수 있을뿐 아니라 배당이 주가와 기업의 경영성과를 연계시키는 고리역할을 하여 주식 시장이 실물경제의 거울이 되게 하는데 필요한 적절한 정책이다. 그러나 문제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배당정책이 왜곡돼 있다는 것이 오래전부터 수없이 논의됐음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개선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배당성향을 높히는 것 뿐 아니라 배당액의 사전공시, 주식배당과 현금배당의 차이, 배당락가격의 결정, 신주와 구주에 대한 차등배당,우선주 배당결정 등과 관련된 문제들을 종합적으로 개선하는 제도의 변화가 마련돼야 한다. 셋째 연기금의 주식투자를 활성화하는 문제이다. 투신사의 주식형 수익증권에 투자하거나 투자자문사의 자문을 구한 경우에는 주식투자손실에 따른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정부의 발표는 정책이라기보다는 미봉책에 불과하다. 우리나라의 연기금은 총자산의 1.6%만을 주식에 투자하고 있다. 영국이 80%, 미국이 48%, 그리고 일본이 26%를 투자하고 있는 것과 비교할때 크게 낮은 수준이다. 그 이유는 정부가 국내최대의 기금인 국민연금의 자산을 시장금리보다 낮은 이자율만을 지급하고 재정자금으로 사용하거나 채권투자만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장기적인 투자에서 채권보다 주식으 평균수익률이 높다는 것과 채권과 주식에 함께 투자하는 것이 장기적인 위험분산효과가 더 크다는 것은 포트폴리오 투자의 기본이다. 국민연금은 2030년을 전후하여 기금이 고갈된 구조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25년 후인 2020년전후까지는 매년 수조원에서 수십조원씩 장기보유자산이 증가한다. 따라서 주식시장의 수요기반을 확보하는 것 뿐 아니라 기금의 장기적인 수익성을 개선하고 효율적인 위험관리를 위해서도 국민연금의 주식투자를 크게 확대해야 할 것이다. 정부는 지난 한해동안 선물시장의 도입, 가격제한폭의 확대, 다양한 주문제도의 도입,신전산체제의 구축등 증권거래제도의 선진화에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증권시장의 근본적인 구조개선에 해당하는 주식수요의 확보를 위한 노력은 게을리했던게 사실이다. 이번 증시부양책이 주식수요 확대를 위한 실효성있는 정책이 될수 있도록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방안이 뒤 따르기를 기대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