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19일자) 믿던 15대 국회 역시 실망

하긴 국회, 그것도 정기국회가 끝나 국민에게 실망을 주지않은 적은 기억에 없다. 어제 폐회된 15대 첫 정기국회도 예외는 아니다. 오히려 실망이 더 컸다면 새 국회에 유난히 정치 신인의 진출이 두드러지니 뭔가 달라지리라는 기대가 무참히 깨졌기 때문인지 모른다. 정기국회의 최대 특징은 새해예산 심의이다. 여야 불문, 행정부로 하여금 규모있게 세금을 써서 국민부담을 줄이도록 하는 일에 가장 많은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결산 또한 같다. 이 본원적인 의무 권한을 이번 국회역시 예외없이 망각한 것이다. 다른 안건에 연계하는 선례를 첫해부터 답습, 지역구에 더 빼내는 흥정외엔 예산에선 마음이 떠나 있었다. 예산에 연계한 제도개선이란 과연 나라의 중대사인가. 나라보다는 의원 자신의 선거가 중요하다는데 여야의 이해가 맞아 떨어졌다. 돈 많이 쓰는 선거를 막자면 출마자 가족외에도 사무장 회계책임자의 연대책임을 물어야만 된다는 개정전 선거법은 백번 옳았다. 그러나 지난 총선에서 혼이 나자 반공법의 "연좌제"이름을 붙여 선거법 핵심조합을 거세하는데 여야가 기만전술을 썼다. 선량이 할일인가. 그런 이권흥정 속에 주요안건, 가령 OECD가입 제도개선법안 추곡가동의등 어느 하나 제대로 내용을 충분히 토론, 최상안을 안출하는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웠다. 몇사람이 수근거려 타협하고 사회봉 두드리면 일은 끝났다. 아무리 정치를 타협이라고 해도 팔아선 안될 불퇴의 원칙은 있는 법이다. 국리민복을 위한 것, 인류적 양심으로 마땅히 지향할 이상이 바로 그런 것들이다. 공명선거 구현은 민주주의 이상이고 국민의 오랜 염원이다. 그 과정에 비록 입후보자의 고통과 손실이 따른다고 해서 흥정에 붙여,모처럼 쌓은 공든 탑을 구렁이 담넘듯 어물정 허무는 작태는 두고두고 15대 국회의 치부로 기록될 것이라 확신한다. 그런 작희에 간계를 짜느라 에너지를 허비한 대가는 무엇인가. 예산심의 외에도 정작 엄청난 지식 노력 성의가 요구되는 노사관계법 안기부법 등 본업은 막판에 변칙으로 해치거나 연말연시 어수선한 틈에 일정을 잡으려는 잔꾀다. 그러나 수수께끼 같이 끝도 시작도 없는 북한문제 한미현안 독도등 한일문제를 처들어 왜 말이 없느냐고 따질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안기부법도 가슴을 열고 보면 여야가 다를게 없다. 93년 개혁입법인 안기부 권한축소 개정안은 여야일치 통과였다. 그러나 남북 기본합의서 조인 직후의 북한 태도와 오늘의 그것은 판이하다. 그에 대한 대응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노동관계법도 그렇다. 초점은 기업의 경쟁력 제고다. 이 공통의 입지에 선다면 원칙상 여야의 충돌은 있을수 없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모든 정치가 내년 대선고지를 향한다. 그러나 거기 길이 있다. 현실정치 잘못하면서 대선만 노리는 정치인 정당은 가차없이 배격하는 국민수준이 돼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19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