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칼럼] 아버지 기 살리기..전효일 <동방그룹 종기실장>

전효일 벌써 한해가 저물어 간다. 해마다 이맘때면 선물꾸러미를 든 사람들로 흥청거리게 마련이다. 그러나 요즘 분위기는 전혀 그렇지 못하다. 거리에는 캐롤송이 울려퍼지고 백화점에는 화려한 네온이 번쩍이지만 활기찬 모습은 느껴지지 않는다. 한해를 정리하고 새로운 계획을 준비하는 설레임이 있어야 하지만 도대체 의욕이 나지 않는 모양이다. 하긴 그럴만도 하다. 이맘때면 으례 나오던 두툼한 연말 보너스도 기대하기 어렵다. 기업들은 캘린더등 연말제작물을 대폭 줄였고 망년회나 송년모임도 아침식사로 대체하는등 예년과는 크게 달라진 모습이다. 사실 올해는 연초부터 어두운 경제전망으로 애당초 "기분좋은 연말"은 기대하긴 힘들었다. 기업의 군살빼기로 많은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었다. "명퇴"와 "감원"의 회오리로 직장인들은 불안해하며 방황하기 시작했다. 어제의 산업역군이 오늘의 "고개숙인 남자" "흔들리는 가장"이 된것이다. 이를 증명해주듯 요즘에는 "남편 기살려주기 운동"이 요란하다. 제목자체를 "아버지"로 붙힌 소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가 하면 명퇴로 밀려난 풀죽은 아버지를 중심에 세운 드라마도 선보였다. 가장의 자리가 위태롭다는 소리가 기우가 아닌듯 이 연말에 아버지를 위로하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는 것이다. 경기악화로 어끼가 처진 이 땅의 남자들에게는 큰 힘이 되는 일들이다. 하지만 지금의 남편 기살리기 운동이 궁지에 몰린 아버지들에게 베푸는 단순한 "인심"이 되어서는 곤란하다. 처진 어깨와 지친 모습에 대한 단순한 연민과 동정이 되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위로와 동정은 자칫 이들을 더욱 위축시킬 수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이는 오히려 흔들리는 가장의 사실을 넘어 아버지 위상이 "추락"으로 굳어질 수 있게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강한 아버지 든든한 가장으로서의 위상이 초라하지 않게 하는 "기 살리기"가 필요하다. 믿음과 자신감을 가지고 처진 어깨를 펼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는 것이다. 연말연시, 지친표정의 불우한 이 땅의 아버지들이 든든한 가장과 산업역군으로 다시 한번 의욕을 갖게 할 수 있는 진실한 사랑과 이해가 필요할 때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