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문화사랑방

유럽의 근대문화를 이야기 하려면 카페나 살롱을 빼놓을 수 없다. 그곳은 신분과 직업을 달리하는 다양한 사람들의 만남의 자리였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고 자유인이 되어 철학 문학 예술 정치등에 대한 의견을 교환했다. 일부 지배계층이나 지식인이 독점했던 고급문화가 일반 시민계층에까지 널리 개방되는데 카페나 살롱은 큰 역할을 해냈다. 세련된 취미나 예절있는 삶의 양식도 그곳에서 길러졌다. 또 여론과 사상형성에 선도적 역할을 한 곳도 그곳이다. 문화사랑방의 역할을 이처럼 자연스럽게 카페나 살롱이 해냈다는 사실은 유럽문화의 특징으로 꼽을만 하다. 60년대부터 각국의 문화정책의 방향은 특정한 문화예술 영역의 발전에서 국민의 평균적 문화역량제고 쪽으로 전환되기 시작했다. 당시 프랑스 문화운동의 기수였던 앙드레 말로가 시작했던 청년문화회관 운동은 이런 유럽의 문화전통을 토대로 구상된 정책이다. 정부의 문화복지정책의 상징적 모델인 한국형 "문화의 집"이 서울 서대문김해 (19일)에 개관된데 이어 정읍 (24일) 영주 (27일)에서도 속속 문을연다는 소식이다. 2001년까지 1백개소, 2011년까지는 3백50개소를 전국에 설치할 계획이라고 한다. 계획대로 이행만 된다면 문화사랑방격인 "문화의 집"이 국민문화수준향상에 큰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문화의 불모지인 대도시의 아파트단지는 물론이고 지방 도시나 농어촌의 문화시설이 거의 마련돼 있지 않은 현실에서 문화인프라의 확충을 반대할 사람은 없다. 단지 걱정스러운 것은 "문화의 집"프로그램이 또 문화예술로 획일화돼 주민들로부터 외면당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한때 문체부가 서울 문화소외지역의 자투리땅에 조성했던 소공원 "쌈지마당"이 당초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비행청소년들의 활동터전이 되고 만 현실을 보면 더욱 그런 걱정이 앞선다. "문화의 집"은 전시회나 열고 음악감상이나 하게하고 공연이나 보여주는차원을 넘어 그곳의 분위기와 정신을 체득하러 가는 매력적인 문화공간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다. 옛유럽인들이 하루종일 카페에 앉아 주고 받는 이야기들속에서 새로운 것을 배우고 웅대한 계획이나 유토피아적 몽상을 할수 있었던 것과 같이 말이다. 그쯤 되려면 무엇보다 "문화촉매자"의 양성이 필수적인데 개관 소식만 요란하니 답답하기만 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