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 재계 '96] (4) '명예퇴직 회오리'..온정주의는 끝났다

샐러리맨들의 96년은 우울했다. 이른바 "명퇴"로 상징되는 기업들의 인력 감원 바람에 가슴졸이는 한해를 보내야 했기 때문이다. 기업들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본격화된 경기침체의 극복수단으로 대대적인인원 삭감에 나섰다. 그 대표적인 수단이 바로 명예퇴직이었다. 과거 공기업에서나 제한적으로 실시되던 이 제도가 올들어선 민간기업으로급속히 확산됐다. 수적으로도 과거와 비할 바가 못됐다. 수십명이 아니라 수백명 단위가 예사였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달말까지 각 기업에서 명예퇴직으로 직장을 떠난 샐러리맨은 줄잡아 3천명을 넘어 작년에 비해 두배이상 늘어난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해의 "명퇴"는 예년과 달리 그 대상이 간부급에서 평사원으로까지 확산돼 논란이 뒤따랐다. 선경인더스트리는 올 상반기에 부.과장급 간부사원 3백81명 가운데 1백4명을 명예퇴직시킨데 이어 지난 9월에는 대리급 이하의 관리및 현장직 사원중 35세 이상에 해당하는 8백20명을 같은 방법으로 내보냈다. 이는 회사 전직원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수치. 이에앞서 포항제철 계열사인 포스틸은 지난 7월말부터 포항과 순천공장의 근로자및 본사직원을 대상으로 신청을 받아 이중 2백여명을, 한국유리는지난 8월 전체 임직원의 20%에 달하는 4백90여명을 각각 명예퇴직시켰다. (주)미원도 지난달말까지 대대적인 조직 슬림화를 위해 전체 임직원의 23%인 1천2백여명을 감원했다. 그렇다고 명예퇴직 바람이 대기업에만 국한된 것도 아니었다. 금융권이나 중소기업으로 급속히 번졌다. 서울은행의 경우 1,2급 부.점장급 간부 1백67명을 포함, 4급(대리) 이상 3백19명을 정기인사를 통해 내보냈다. 중견업체인 행남자기의 경우 아예 수시로 신청을 받는 "상시 명예퇴직제도"를 도입하기도 했다. 경총이 최근 국내 2백78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바에 따르면 현재 명예퇴직제를 도입했거나 도입을 검토중인 기업은 27.3%인 75개사에 달하고있다. 기업들은 인원감축과 함께 기존 인력을 재배치해 신규고용을 최소화하는 방법도 동원했다. 전자부품업체인 삼성전기의 경우 최근 부산 자동차부품공장 완공에 앞서 연구직과 생산자동화 관련 인력은 신규채용을 최소화하고 수원 본사 인력의재배치를 통해 필요인력을 충당했다. 기업들이 이처럼 대대적인 인력 감원에 나선 것은 단순히 인건비 절감 차원은 아니었다. 경제위기의 주요원인으로 꼽히는 "고비용-저효율" 구조를 근본적으로 수술하기 위한 방편에서였다. "불황이 장기화될 조짐이 보여 기업으로서는 한계사업을 과감히 정리하는 등 몸집 줄이기가 불가피했다. 다시말해 조직의 통폐합이나 사업구조조정을 해야 하는데 그 과정에서 인력 감축이나 재배치는 자연히 뒤따를수밖에 없다"(선경인더스트리 서태구인력관리담당이사)는 것이다. 그러나 명예퇴직제가 몰고온 후유증은 예상외로 심각했다. 가족의 생계를 꾸려갈 가장이 직장을 잃어 "고개숙인 아버지" 신드롬을 낳기도 했고 이는 급기야 사회적인 논란거리로 확대됐다. 문제는 고용불안이 올해로 끝날게 아니라는 데 있다.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심각해질 것이라는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한국노동연구원은 명예퇴직 등 고용조정의 영향으로 실업률이 올해보다 0.4% 포인트 늘어난 2.4%로 높아질 것으로 예상했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