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신인사제도의 허와 실..박호환 <아주대 교수/경영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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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정적이고 자극적인 용어를 잘 만드는 일본사람들이 가격인하 바람을 가격파괴라고 부르더니 급기야 능력주의를 지향하는 새로운 인사관리를 인사파괴라 하고 팀제를 중심으로 하는 조직개편을 조직파괴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다. 전통적으로 화와 가족주의를 표방해온 일본의 경영관행에 일대 지각변동이 생겼다는 뜻에서 파괴라는 말을 붙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인사파괴와 조직파괴는 소비자들에게 이익을 주는 가격파괴와 달리 회사구성원들에게 불이익을 줄 수 있고 또한 사용자가 흑심을 갖고 시작한다는 오해를 주기 때문에 결코 적합한 용어가 아니다. 그런데 요즈음 우리나라 기업에서 실제 이뤄지고 있는 명예퇴직이나 권고사직을 보면 정말 파괴로 가는 것이 아닌가하는 걱정이 든다. 그리고 사용자들이 정말 대량해고를 통해 단기 수익성을 올리려는 의도가 눈에 뜨일 정도로 드러난다. 이런 것들은 현재 진행되고 있는 새로운 인사및 조직관리를 그 기본논리와 배경을 이해하지 못한채 겉으로 보이는 장점만보고 도입하려고 하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인 것 같다.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을 위주로 급속히 도입하고 있는 소위 신인사제도는 일본에서 기존의 연공서열주의 일변도에서 벗어나 능력주의와 성과주의를 가미하는 형태로 발달시킨 신인사제도를 그 이름과 내용 거의 그대로를 도입한 것이다. 일본이 이 새로운 제도를 고안하고 실험을 한 것은 70년대 초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비용절감을 해야했기 때문이었고 그것을 본격적으로 적용한 것은 80년대 들어 엔고를 겪으면서 인사 및 조직관리차원에서 비효율을 제거해야 했기 때문이다. 국내에도 기존의 직급제도와 임금체제,다단계 피라미드조직으로는 기업의 경쟁력이 올라가지 않는다는 절박한 인식에서 새로운 제도가 요청됐고 도입됐다. 인사관리 측면에서 우리에게 가장 위협적인 것은 고임금이 저생산성과 결합돼 있는 점이다. 고임금 자체는 결코 나쁜 것이 아니다. 많이 줄 수 있고 많이 받으면 서로가 좋다. 다만 많이 주는 대신 성과를 많이 거두면 고임금은 원가상승요소가 되지 않는다. 우리의 종업원들은 생산성이 낮기 때문에 임금인상을 제품가격에 전가시킬 수 밖에 없는 처지에 빠져 있다. 이런 현상은 "임금-가격 연쇄상승(wage-price spiral)"이라고 하여 70년대와 80년대 미국경제를 좀먹은 주범중의 하나였다. 미국은 이것에서 헤어나기 위해 "미국의 일본화(Japanization)"라는 치욕적인 말을 들어가면서 일본의 품질관리와 리더십원리를 배워갔다. 우리는 80년대 후반부터 급격한 임금인상을 겪으면서도 생산성과 가격 전가에 대한 노사간의 합의가 없었던 관계로 미국이 갔던 길을 지금 따라 가고 있다. 기업내부의 원가관리 관행은 한 번 정착되면 변경하기가 쉽지않기 때문에 지금이라도 고임금이 가격경쟁력저하로 이어지지 않는 길을 찾아야 한다. 그 길 중의 하나가 최근 논란을 빚고 있는 신인사제도다. 급여와 상여금을 더 이상 근속연수에만 맞추지 않고 능력과 성과를 어느 정도 반영하고, 부서장도 근속보다는 조직 관리능력이 우수한 직원에게 맡기는 것이다. 또 업무능력 향상을 위해 체계적이고 집중적인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다단계 결재구조를 단축시켜 현장의 변화속도에 빨리 따라 가도록 하는 등의 개편은 빨리 하면 할수록 그 기업은 인사 및 조직관리 측면에서 경쟁력을 얻는 것이 될 것이다. 이 제도를 둘러싸고 현재 많은 논란이 있다. 극단적으로 노동조합측은 이 제도를 노조파괴를 위한 시도라고 몰아붙이고 있다. 그러나 우리 노동조합도 이제 임금과 복지에만 사활을 걸 일이 아니라고 본다. 일본의 노동운동이 60년대 사용자와 대타협을 통해 고용안정과 경쟁력강화라고 하는 국민차원의 목표를 성취했고, 미국의 노동조합들이 고용안정을 위해 80년대 후반부터 사용자와 협력해 임금-가격의 연결고리를 끊는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던 점을 배워야 한다. 또한 젊은 신세대 조합원들이 연공서열주의에 반발하고 있는 점도 조합간부들은 인정해야 할 것이다. 사용자측도 이 제도를 악용하는 사례가 있는 것 같다. 먼저 팀제조직으로 전환하면 어쩔 수 없이 인력이 남게 된다. 이것을 인력감축의 기회로 활용해 소위 명예퇴직의 형식으로 중고령 종업원을 내보내는 것이 우리 주위에서 매우 흔해졌다. 이런 의도가 깔려있는 조직개편을 일시에 수억원의 당기순이익을 올릴 수는 있겠으나 살아남은 직원들을 경직시키고 언젠가 먼저 회사를 배반하는 것이 현명하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종업원에게는 눈에 보이는 노력도 있지만 눈에 안 띄는 태업도 있다. 기업도 "종업원의 사기를 먹고 힘을 내는 조직"이다. 일시적인 수익을 위해 그 동안 안정시켜 놓았던 종업원관계를 깨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기업들이 신규채용 동결과 사내직무전환교육을 통해 잉여인력문제를 풀어 간 교훈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신인사제도와 팀제조직을 마치 일류기업이면 반드시 해야 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용자도 있는게 사실이다. 인사제도및 조직은 기업 구성원의 체질이 맞는 것이어야 한다. 구성원들이 수용하는 제도가 바로 좋은 제도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반대하는 직원들을 설득해 참여자로 전환시키는 피곤한 작업도 마다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일본사람들이 3,4년 걸려서 종업원의 지원을 얻어낸 후 팀제 조직개편과 직능급제도를 도입하는 끈기와 준비성을 배울 필요가 있다. 더 이상 인사와 조직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린다는 말이 나오지 않아야 한다. 신인사제도와 팀제는 만병통치약도 아니고 백해무익한 것도 아니다. 종업원과의 신뢰관계를 유지하는 선에서 생산성향상을 위해 도입한다면 기존의 것보다는 더 좋다는 정도로 인식하는 것이 나올 것 같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26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