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실패한 신증권정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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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증권감독원장 구속사태에서 뜻을 품은 신증권 정책은 실패했다. 신증권정책의 목표가 시장자율성 회복이었으나 어디에서도 그런 흔적을 찾아볼 수 없으니 실패라고 불러야 한다. 증시안정기금 대신에 연기금을 등장시킨 것이라든지 통치지수 방어를 위해 허겁지겁하는 것은 한결같은 과거의 모습이다. 주식시장을 더이상 누더기로 만들지 않겠다는게 신증권정책이었으나 여전히 땜질처방에만 시달리고 있다. 신증권정책 실패를 자초한 것은 주식수요 진작을 목표로 한 2부종목에 대한 신용융자 허용이다. 과다한 신용투자가 수급균형을 무너뜨렸고, 급기야 자본시장을 위기로까지 내모는 부메랑이 됐다. 2부종목에 대한 신용허용은 주식시장을 투기판으로 만들었다. 자본금이 수십억원에 지나지 않는 소형주는 신용투자로 주가조종이 과거보다 2배나 쉬워졌다. 소형재료주의 경우 신용에 의한 가수요가 주식 씨를 마르게 했고 그런 종목이 마구 시세를 터뜨려댔으니 주식투자자들로 하여금 투기꾼으로 옷을 갈아 입게 한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주식시장은 본래 기업자금 조달이란 본성이외에 투기적 속성이 항상 발톱을숨기고 있다. 신용투자같은 것은 더더욱 칼날과 같은 것이다. 40년 주식시장 역사에서 2부종목에 대해 신용투자를 허용하지 않은 데는 그만한 까닭이 있었다. 기업내용이 변변찮아 투자위험이 높다거나 주가조종의 가능성을 염려한 것등이 그것이다. 그런 것을 의욕 하나로 실험하려 했으니 96년 폐장주가는 신증권정책이 너무나 낭만적이었다고 경고하고 있다. 첫 단추가 잘못 끼워졌다면 다시 끼우는게 상책이다. 시행착오를 통해 현실을 개선하는 데는 너무나 많은 비용이 따른다. 현실적으로 그럴 처지도 못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부종목 신용에 대한 개선책이 거론조차 안되고 있는 것은 사태의 원인에 대해 전혀 시각이 미치지 못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허정구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