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환딜러 설땅이 좁아진다' .. 전자거래/환율시장 구조변화

외환딜러-. 한때 "마이더스의 손"으로 불렸던 꿈의 직업. 그러나 이젠 갈수록 설땅이 좁아지고 있다. 소속 은행과 증권회사들이 해고의 칼날을 치켜들고 있는 것이다. "어떤 통화를 사야 하나"가 아니라 "어떻게 살아 남나"가 고민이 되버린지 오래다. 이들에게 96년은 잔인한 한해였다. 외환중심지인 런던에서만 수백명이 자리를 잃었거나 곧 떠나야 한다는 통보를 받았다. "외환딜러들의 30%가 추가로 해고될 것"이란 루머는 여전히 런던금융가를 뒤숭숭하게 하고 있다. 런던만이 아니다. 지난 10월 워싱턴에서 열린 "포렉스 USA" 회의에 참석한 딜러들의 주요 이슈는 "앞으로 3-5년동안 북미외환시장의 딜러들의 절반가량이 없어질 것"이었을 정도다. 실제 많은 금융기관들이 올해 외환운영팀을 없앴다. 물론 해외지점의 딜러들이 우선 대상이다. 미국의 BOA와 네이션스뱅크는 런던지사의 외환딜러 수십명을 해고했다. 영국은행도 뉴욕 외환팀을 폐쇄했다. 프랑스파리바은행 뉴욕외환팀도 본거지인 파리로 철수했다. 3년전 전세계에서 2백명의 외환딜러들을 두고 있던 SBC워버그도 지금은 1백명으로 줄였다. 외환딜러를 줄이는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전자거래활성화. 외환거래는 그동안 젊은 "딜러"들의 전유물처럼 여겨졌었다. 그러나 최근에는 전자시스템을 통한 자동거래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여기에는 EBS와 로이터의 역할이 컸다. 이 회사들은 전세계 수백개 은행으로부터 세계 주요 통화의 가격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외환을 사고팔수 있는 전자거래시스템을 보급해 왔다. 지난 93년 EBS거래 첫날 거래량은 10억달러였으나 한달만에 거래량이 730억달러로 늘었을 정도다. 두번째는 보다 구조적인 원인이다. 최근들어 각국 화폐의 움직임이 그렇게 폭발적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미국 달러화는 올해 독일마르크화에 대해 0.14마르크밖에 움직이지 않았다. 일본 엔화에 비해서도 11엔 움직이는데 그쳤다. 지난해에는 25엔 움직였다. "가격 움직임이 적으면 특별한 통화에 베팅을 거는 경우가 거의 없다"(아이안 그랜 쉬로더증권의 외환딜러)는 지적이다. 때문에 "외환시장에서 수익내기는 점점 어려울 것이다"(올리비어 드이어 파리바은행 유럽환시책임자)는 말도 설득력있다. 특히 유럽 외환시장은 가장 먼저 사양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93, 94년 유럽 외환시장은 화폐통합을 반대하는 영국 파운드화와 이탈리아 리라화의 가치가 떨어지면서 급속히 성장했다. 영국과 이탈리아 중앙은행은 자국화폐의 가치하락을 막기 위해 시장에서 적극적인 매입에 나섰고 이덕에 딜러들은 엄청난 수익을 낼수 있었다. 그러나 유럽환율시스템은 점점 안정되가고 있다. "유러"라는 단일통화탄생을 눈앞에 둘 정도다. 여러나라의 통화가 하나로 통합되면 "외환거래"는 사실상 무의미해진다. 은행들이 외환거래에 상당한 타격을 줄게 불을 보듯 뻔하다. "유러화가 탄생하면 은행들이 파리나 브뤼셀에서 외환거래를 할 필요가 없어질 것"(짐 오닐 런던 골드만삭스 통화분석가)이란 지적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3년내에 전세계에서 6개정도의 은행만이 중요한 외환거래를 대부분 담당할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에 참여하는 딜러들은 여전히 마이더스 손의 영화를 누릴 것이다. 그러나 그들을 뺀 상당수 외환딜러들은 그전에 도태될 것이 분명하다. (한국경제신문 1996년 12월 3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