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이렇게] (5) 갤리리현대 대표 박명자씨

97년은 미술품시장 개방 첫해다. 국내 미술계와 화랑가 모두 물밀듯이 밀고 들어올 서구의 현대미술에 과연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뚜렷한 방향을 설정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국내 화랑중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갤러리현대 대표 박명자씨(54)는 "여건은 어렵지만 지나치게 겁낼 것은 없다"고 말한다. "저희 화랑을 비롯, 국내의 적지 않은 화랑이 80년대 후반부터 시카고 및 바젤.쾰른아트페어와 FIAC 등 주요 국제미술제에 두루 참가해 우리미술을 세계 무대에 널리 알려왔습니다. 몇몇 화랑은 외국유수의 언론으로부터 세계 100대 화랑에 꼽힐 만큼 국제무대에 소개돼 있습니다" 따라서 국내 화랑도 충분한 경쟁력이 있다고 밝힌 그는 무조건 움츠러들기보다는 당당하게 대처해 나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여러 경로를 통해 계속 외국작품이 들어왔기 때문에 시장개방이 돼도 크게 걱정할 게 없습니다. 또 불경기때 시장이 개방된 것도 천만다행인것 같습니다" 어차피 미술시장 경기가 좋지 않은 만큼 이 시기를 외국미술에 대한 안목을 넓히고 국내시장을 재정비하는 기회로 삼으면 좋으리라는 얘기다. 그는 또 현재로서는 시장개방보다 미술품을 부의 상징이나 투기의 개념으로 바라보는 우리사회의 시각이 더 문제라고 말한다. 그는 특히 문화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을 높이기 위해서는 정치와 재계등 지도급 인사들의 의식이 크게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5천년 역사를 지닌 문화민족이라고 하면서도 대통령의 해외순방때 문화예술인을 데려간 적이 있느냐는 것이다.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의 경우 방한시 세자르나 소피 마르소 등문화예술인들과 함께 왔었다는 설명이다. "예술품은 곧 국력이라는 생각이야말로 시장개방에 제대로 대응할 수 있는 길입니다. 고려청자와 조선백자가 소중한 것처럼 근현대작가들의 작품도 중요합니다" 그는 한국인의 입장에서 피카소와 박수근중 과연 누구를 중시해야 하는지냉철하게 판단해야 한다며 요셉 보이스는 국제무대에서 상상을 초월하는 대우를 받고 있는데도 그와 함께 작업한 백남준은 평가절하하려는 풍토는 없어져야 한다고 얘기한다. 국내 현역작가 작품의 거품현상은 분명 경계해야 하지만 한국을 대표하는 원로 및 작고작가들의 경우 국제시세와는 별도로 보호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박씨는 올해 화랑의 경쟁력 강화를 위해 다각도로 활로를 모색할 예정. 우선 신관은 기획전시중심, 구관은 상설전시관으로 활용하되 전시회는 중진.중견 및 원로작가, 외국작가, 젊은작가를 위한 기획전 등 3가지 패턴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외국작가전의 경우 일반인들의 안목을 높여주기 위해 보여주는 전시에 초점을 맞췄다. 4월 소토전과 6월 베르나르 부네 (조각), 7월 바스키야, 11월 제임스 브라운전을 기획했다. 또 김흥수 김창열 권옥연 이우환 박서보씨 등 원로작가들의 신작전외에 이상남 이융세씨 등의 개인전과 "젊은 작가전" 등 신진작가를 위한 기회도 대폭 늘린다. 환경조형팀 또한 별도로 분리, 강화한다. 지난해 문을 연 아트숍도 체인형태로 운영할 예정. 이를 위해 96년 11월 신세계 현대아트에서 그룹전을 열었던 공예가 5인의 작품을 아트상품으로 개발하고 아트포스터도 다양화할 채비를 갖췄다. "올해는 단순한 상업화랑에서 벗어나 공익성을 중시하는 복합공간으로 새롭게 변신하겠습니다" 어느 해보다 보람찬 한해를 만들겠다는 각오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