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부 '재계인사'] (4) 불황극복 "영업이냐...관리냐..."

당면한 불황을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하는 문제는 올해 내내 재계의 화두가 될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어떤 전략.전술로 불황을 극복할 것이냐는 점. 여기에서 각 그룹별 색채가 뚜렷이 드러난다. 공격적인 정면돌파냐, 내실경영이냐, 아니면 이 두가지를 합한 절충형이냐 등등. 그런점에서 각 그룹의 인사내용을 분석하는 것은 전략의 차이를 이해하는 "키워드"가 된다. 현대그룹은 정면돌파형으로 보인다. 영업과 기술부문에서 승진자가 많았다는 것은 그 반증이다. 이번 인사에선 1백32명의 승진자가 영업부문에서 배출됐다. 전체 승진자의 36% 수준이다. 특히 김대윤 현대건설사장, 조충휘 현대중공업부사장 등은 대표적인 영업통. 그룹 경영의 무게가 영업쪽에 실릴 것임을 시사한다. 이와 대조적인 곳이 삼성그룹이다. 재무.관리통이 약진했다. 전통적으로 관리부문이 강하다는 게 삼성의 캐릭터이긴 하지만 이번 인사에선 특히 그랬다. 이학수 비서실장을 비롯해 김순택 삼성중공업 대표, 배종렬 제일기획 대표 등은 모두 비서실 출신으로 "관리의 삼성"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이건희회장이 신년사를 통해 "창의" "전략"과 함께 "관리"를 핵심축으로 꼽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물론 각 그룹의 인사를 단순히 관리형 또는 공격형으로 구분하는 것은 다소 위험한 발상이다. 기업의 경영전략은 훨씬 복잡하며 "칼로 두부 자르듯" 구별할 수 없는 측면이 있기 때문. 그러나 개별 그룹들의 전략이 인사에 반영돼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특히 "관리"와 "영업"은 이같은 전략의 큰 줄기를 형성하고 있다. 계열사가 처한 사정에 따라 강조하는 포인트가 달라지기도 한다. 선경그룹의 경우 (주)선경은 영업부문을 강화했다. 승진자중 의류본부장을 거친 정태천전무와 박주철 이사는 대표적인 영업통으로 꼽힌다. 반면 대규모 감원의 아픔을 겪었던 선경인더스트리는 경영역량의 누수방지에 포인트를 두었다. 조민호 선경인더스트리사장과 김창근 상무의 발탁은 이의 연장선이다. 여타 그룹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쌍용그룹은 김성원 쌍용제지 이사대우를 입사 14년만에 임원으로 승진시켜 "영업 최우선 원칙"을 확인했다. 김이사는 입사 이후 줄곧 마케팅과 영업부문에서 일한 영업전문가다. 두산그룹의 김대중 두산경월사장은 앞으로 두산의 소주사업을 이끌 재목으로 꼽히는 인물. 김사장은 기획과 영업에서 잔뼈가 굵은 이로 "그린소주"를 히트시킨 일등공신이다. 박성석 한라그룹 기획실장 겸 부회장은 오랫동안 그룹 살림살이를 맡아온 관리통으로 이번 인사를 통해 요직에 등용됐다. 전원중 효성 T&C부사장과 변창혁 코오롱상사 전무의 승진도 영업 부문 강화와 무관치 않다. 이와함께 그룹내에서 장기간 재무와 총무를 담당했던 이병인 효성생활산업전무는 그룹 종합조정실로 발탁돼 그룹 살림을 맡게 됐다. 기업의 인사는 그 자체로 경영전략을 이해하는 주요 포인트가 된다. 공격적인 경영이 필요할 때라면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경영자가 필요할 테고, 기업 경영환경이 어려울 때라면 관리형 경영진이 있어야 한다. 사장단 인사와 임원 인사를 통해 각 그룹의 서로 다른 전략을 비교해볼 수 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을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11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