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의 세계엔 별일도 많다] (13) 스타와 플레이

호간을 이긴 7,500여명 벤 호간 (미국,85)은 말이 필요없는 전설적 프로. 그는 1953년 매스터즈와 US오픈, 그리고 브리티시오픈에서 우승하며 역사상 가장 가깝게 그랜드슬램 (단일연도 4개 메이저 우승)에 다가선 인물이다. 메이저는 총 9승이며 특히 1949년 치명적 교통사고에도 불구, 이듬해 US오픈에서 우승하는등 집념의 재기를 보여 주었다. 호간은 50년대초 북미지역에서 너무 유명한 프로였다. 그의 일대기는 51년 "Follow The Sun"이라는 타이틀로 영화 (글렌 포드 주연)로 만들어질 정도. 그런데 1952년 벤 호간은 아마추어들과 시합을 해서 7,512위를 차지했다. 그를 이긴 골퍼가 7,511명이나 됐다는 얘기. 사연인즉 다음과 같다. 178타로 호간 제압 1952년 5월31일은 첫 제정된 "내셔널 골프 데이" 이를 기념, 미 프로골프협회 (USPGA)와 "라이프" 잡지사는 공동으로 "벤 호간과의 시합"을 만들어 냈다. 누구든 스코어로 호간과 겨뤄보라는 것. 참가비는 당시로서는 거금인 1달러. 이기면 1달러를 돌려 받지만 지면 그 수익금이 USO (미 위문협회) 및 NGF (미 골프재단)기금으로 들어가게 돼있었다. 참가자들의 스코어 산출방식은 캘러웨이시스팀(도표에 의해 핸디캡을 산출한 뒤 네트스코어 계산)이고 어디든 자신의 홈코스에서 치면 됐다. 반면 호간은 그해 6월 US오픈 장소인 노스 우드CC에서 플레이하기로 결정됐다. 참가자는 무려 5만5,015명. 그들은 "호간을 이기자"며 미전역과 캐나다의 수많은 골프장에서 첫샷을 날리기 시작했다. 호간이 5만5천여명의 아마추어들과 경기를 벌일때 노스 우드CC (파71,6,811야드)에는 1만5천여 갤러리들이 구름같이 몰려 들었다. 호간은 2번홀에서의 3m버디등 전반에 버디만 두개 잡아 2언더파 34타를 쳤다. 그러나 후반엔 다소 주춤 버디1, 보기3개로 마감했다. 결국 호간의 스코어는 이븐파 71타. 그 71타를 이긴 아마추어는 총 7,511명이었고 그중에는 8살짜리 소녀에서 부터 79세의 할아버지까지 다양했다. 캔저스시티 퀴베라CC에서 플레이한 다이안 윌슨이라는 8세소녀는 핸디캡 48에 네트 69타를 쳐 호간을 2타차로 눌렀고 존 헤인이라는 79세 골퍼는 네트스코어가 경이적인 60타였다. 또 마리안 브래들리라는 워싱턴 아줌마는 178타를 쳤으나 네트가 67타로 나오며 호간을 4타차나 따돌렸다. 평생의 자랑 이상의 스토리는 미국골프의 "여유"를 상징할지 모른다. 격에 어긋나는 시합이라도 그 뜻만 좋으면 사람들은 천진하게 참여한다. 골퍼들이 십시일반 "기금 모금"에 협조하며 골프사랑을 표현하는 셈이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최상호와의 시합"을 만들면 반응이 어떻게 나올까? 경위야 어찌됐건 당시의 승자들은 평생을 두고 자신의 친구들이나 자식들에게 말 할 것이다. "당신 벤 호간하고 시합해 봤어? 난 벤 호간을 꺽은 골퍼야"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0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