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철강 부도 이후] 정태수 총회장 계열사 얼마나 건질까

정태수 한보그룹총회장의 입장이 돌변했다. 정총회장은 한보철강이 부도처리된 뒤인 지난 23일오후 8시30분 한보철강의경영권포기각서를 제출하려 했다. 또 정보근한보그룹회장은 24일 제일은행을 방문, 한보철강과 (주)한보에 대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등 채권단의 입장에 적극 동조하겠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에는 기자회견을 갖고 정총회장이 한보그룹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지난 22일 오후까지만해도 경영권고수를 완강히 주장했던 정회장의 입장이 1백80도 돌변한 이유는 간단하다. 한보철강을 은행관리로 전환,경영권은 빼앗기더라도 최소한 소유권은 계속보유하겠다는 의도에서다. 그것이 여의치 않으면 재무구조가 탄탄한 소규모의 계열사 몇개라도 건지겠다는 의도가 내포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한보철강을 되살리는건 이미 물건너 갔다. 정보근회장이 이날 한보철강의 부도처리유예를 요청했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현재 부도처리유예라는 제도는 어느 규정에도 없다. 일단 부도가 나면 부도를 없었던 일로 하는것은 있을수 없다. 따라서 한보철강의 부도는 이미 기정사실이다. 부도처리유예는 되지 않더라도 법정관리를 은행관리로 전환할수는 있다. 일단 부도가 난 기업은 은행연합회에 적색거래처로 모든 금융기관거래가 중지된다. 신규여신도 받을수 없으며 당좌거래를 재개할수도 없다. 그러나 채권단의 동의가 있으며 부도업체라도 얼마든지 신규여신을 받을수있고 당좌거래를 재개할수 있게 된다. 은행연합회의 "금융기관 신용정보교환및 관리규약"에는 "정부 또는 금융기관 주도하에 정상화방안이 추진되고 있는 기업체의 경우 적색거래업체로 지정됐을지라도 여신거래가 있는 금융기관의 전원합의후 은행연합회 이사회의 의결을 거치면 당좌거래및 신규여신등을 취급할수 있다"(제27조1항)고 규정돼 있다. 이 규정에 의해 채권단의 결정여부에 따라선 얼마든지 부도유예효과를 얻을수는 있다. 채권단이 이런 결정을 하려면 한보철강의 부족자금을 막아주고 소요자금도 계속 지원한다는게 전제돼야 한다. 따라서 법정관리를 취할 필요가 없게돼 자연스럽게 은행관리로 전환하게 된다. 채권금융기관들은 그러나 정총회장측의 입장변화에도 불구하고 "부도-법정관리-제3자인수"라는 당초 입장을 고수키로 결정, 이런 가능성을 일축했다. 교환돌아오는 엄청난 자금을 모두 지원해야 하는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다 꾸준히 일고 있는 "특혜시비"에 휘말릴 것을 우려한 탓이다. 따라서 정총회장은 몇개의 계열사를 건지는 것에 기대할수밖에 없게 됐다. 이에 대해 채권은행의 고위관계자는 "채권단들이 추자자금지원을 하지 않으면 한보계열사들이 연쇄부도를 당할수 밖에 없으나 재무구조가 튼튼하거나 당분간 결제자금이 교환돌아오지 않는 일부 계열사에 대해선 정총회장의 소유권유지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따라서 정총회장은 잘하면 당기순이익을 기록하고 여신규모가 비교적 적은 대성목재 한보신용금고 상아제약 승보목재등 3-4개 계열사를 건질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현재처럼 정총회장에 대한 채권단들의 "냉담함"이 계속된다면 이마저도 힘들어질 전망이다. 이들 계열사도 결국엔 교환자금이 돌아올 것이고 자체자금이 부족한 정총회장측이 이를 결제한다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결국 채권단들이 "정총회장 살리기"로 맘을 돌리느냐 여부에 따라 정총회장이 계열사를 몇개나 건질지가 판가름날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5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