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부도 파문] "무소불위" ..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

한보사태가 진전될수록 의문은 커져만 간다. 정부와 금융권 한보그룹내에서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계속돼왔음이 확인되고 있다. 이런 ''의문점''들이 ''의혹''으로 번지면서 파장은 이상한데로 확산되고있기도 하다.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들을 정리했다.[[[ 사세 확장 ]]] 지난 91년 수서사건으로 공중분해 위기에 처했던 한보그룹이 다시 재기해 무서운 속도로 사세를 키운 것은 매우 기이한 대목이다. 한보가 수서파문이후 초고속 성장가도를 달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93년 정총회장이 경영일선에 전면 복귀하면서부터. 92년까지만해도 4개 계열사에 불과했던 한보는 문민정부들어 한보정보통신승보목재 한보관광 승보철강 한보엔지니어링 상아제약등 무려 6개 회사를 설립하거나 인수했다. 94년엔 정암생명공학 연구소를 설립했고 삼화신용금고 영동전문대 등을 사들였다. 이렇게 해마다 3-4개 회사를 추가해 계열사 숫자가 95년엔 26개로 불었다. 당시 한보의 기업확장에 투입된 돈은 대충 계산해도 2조원이 넘는다. 한보는 자금난 얘기가 나오기 시작했던 작년 7월엔 4천만달러를 들여 시베리아 가스전 개발에 나서는 대담함을 보이기 까지 했다.[[[ 유원건설 인수 ]]] 지난 95년6월 국내 도급순위 33위의 유원건설을 인수한 배경도 재계에서수수께기다. 한보는 유원을 인수하면서 자산기준 18위의 대기업 그룹으로 우뚝 섰다. 당시 유원건설의 주거래 은행이던 제일은행은 이 회사를 대성그룹에 넘기기로 하고 인수조건을 한창 논의중 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난데없이 인수자가 한보로 지목돼 버렸다. 한보는 재무구조 등으로 볼때 대성산업에 비해 훨씬 불리한 조건이었다. 그런데도 유원건설의 한보행은 절차와 속도를 모두 무시한 의외의 결과였다. 단순히 은행독자겆으로 결정한 것으로 보긴 어려웠다. 이에 대해 당시 이제일은행장은 "대성이 시간만 끌면서 값을 떨어뜨리려고 해 한보의 정총회장에게 인수를 제의했더니 선뜻 수락했다"고 밝혔다. 한편 업계에선 "제일은행이 골치아픈 유원을 한보에 넘기는 대신 한보측에엄청난 금융지원등을 약속한 이면 계약을 했을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도 대두되고 있다.[[[ 코렉스 도입 ]]] 한보는 지난 94년 통상산업부에 1조원이 들어가는 "코렉스(용융환원설비) 기술도입신고서"를 제출했다. 통산부가 아무런 이의없이 수리했다. 이 코렉스는 세계 어느나라에서도 상업성이 검증 안된 최신 설비이다. 특히 한보는 연산 75만t 짜리 코렉스로 2기를 동시에 들여와 설치했다. 코렉스 설비의 경우 포철도 이제 겨우 60만t 짜리를 연구개발용으로 들여왔지만 아직도 정상가동에 애를 먹고 있을 정도로 간단치 않은 것. 그러나 통산부 실무자들은 한보를 오히려 추켜 세우기 일쑤였다. 철강산업 발전방향에 대한 얘기만 나오면 한보처럼 코렉스등 신공법에 집중 투자해야 한다며 열을 올렸다. 현대그룹이 일관제철소를 추진할때 통산부가 전개한 반대논리중 하나도 바로 그것이었다.[[[ 아산만 매립 ]]] 업계에선 한보의 당진제철소 부지 매립에도 강한 의혹을 제기한다. "한보가 당진제철소 계획을 수립했던 89년 당시 제철소 부지인 당진군 송옥면 고대리 일대는 정부가 수립한 "공유수면 매립 기본계획"에 포함돼 있지 않았다. 그러나 건설부가 한보철강의 기본계획 변경요청안을 전격 수용해 이를 다시 고시했다. 한보의 요청이 있은지 불과 6개월만의 일이다"(H그룹 관계자). 그래서 당시엔 한보가 국토계획을 바꿔 놓았다는 얘기가 돌았다. 실제로 공유수면 매립 기본계획은 지난 82년10월 처음 생긴후 85년 국책사업인 부산항 등의 지정항만구역내 매립 계획때 단 한차례 변경됐을 뿐이다. 지난 91년 수서사건 이후 관계당국도 내부조사 보고서를 통해 당시 건설부가 연구기관의 용역은 물론 충분한 타당성 검토도 없이 단기간내에 기본계획을 변경한 것에 의문을 제기했다.[[[ 투자비 급증 ]]] 한보는 당초 당진제철소의 총 투자비를 2조7천억원으로 잡았었다. 그러나 한보가 최근 밝힌 당진제철소 총 투자규모는 5조7천2백65억원. 투자액이 몇년새 2배이상 늘어난 것이다. 연산 1백만t의 소형봉강공장 건설에 한보는 4천3백80억원이 투입됐다고 밝혔다. 하지만 다른 기업의 경우 이 정도 공장설립엔 3천억원도 채 안들어간다는게업계의 지적이다. 또 연산 2백만t의 열연강판 공장에 7천8백억원 정도가 들어간 것으로 잡혀있지만 포철은 최근 비슷한 규모의 설비를 6천4백억원에 들여 놓았다. 따라서 당진제철소 1단계 공사는 1조원 정도면 뒤집어 썼을 것이란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공장부지 매립에 추가비용이 들었으며 환율변동, 건설자금이자, 제철소 주변 인프라 구축, 설계변경 등으로 예상치 못한 투자소요가 생겼다는게 한보측의 설명이지만 너무 차이가 커 다른곳으로 유출된게 아니냐는 의혹이일고 있다.[[[ 과다한 여신 ]]] 93년이후 한보철강의 매출액은 4천억원을 조금 넘은채 성장세가 매년 답보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부채비율은 93년말 3백48%에서 96년엔 1천8백92%로 5배이상 늘어났다. 더구나 95년부터는 극심한 적자상태로 돌아섰으며 96년의 경우 상반기에만 9백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같은 부실한 재무구조로 은행으로부터 대출받기란 "하늘의 별따기" 만큼이나 어렵다. 그러나 은행들의 여신규모(지급보증포함,연말기준)는 92년 3천4백46억원94년 1조5천2백29억원 95년 2조5천8백51억원 96년 3조5천4백27억원등으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최근 2년간 매년 1조원씩 대준 셈이다. 이 기간중 제2금융권은 여신을 끄는데 주력, 은행과 대조를 이뤘다. 세간의 의혹에 대해 한 채권은행장은 "누군들 돈을 주고 싶어 줬느냐"는 말로 대신했다.[[[ 은감원 방조 ]]] 자금지원과정에서 제일은행의 편중여신이 유독 관심을 끈다. 제일은행의 한보철강에 대한 여신은 모두 1조1천1백77억원. 자기자본의 60%, 총여신의 4.5%에 이르는 수준이다. 95년이후에만 약 8천여억원이 소나기식으로 지원됐다. 특히 제일은행을 비롯한 채권은행들은 "동일인 여신한도"라는 은행법 규제를 피하기 위해 신탁계정을 통해 대거 자금을 지원했다. 4개 채권은행단의 총 대출금규모는 1조3천8백70억원으로 이중 49.1%인 6천8백15억원이 신탁계정에서 나갔다. 그러나 감독원등 금융당국은 이에대해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보와 관련, 은감원은 지난해 11월 제일은행에 대한 정기검사를 실시하면서 "여신심사 사후관리및 담보를 강화하라"고만 지적했다.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감독해야할 감독기관이 규정만을 내세워 한 은행이 특정기업에 자기자본의 60%를 대출해주도록 방조했다는 얘기다.[[[ 지원 전격 중단 ]]] 제일 산업 조흥 외환등 4개은행들은 지난해 9월부터 12월에 4천억원을 한보에 협조융자해 줬다. 4개은행들은 지난8일 1천2백억원을 긴급 수혈해 주기 했다. 자금을 지원할 때마다 채권은행들은 "국가기간산업인데 어떻게 부도를 낼수 있느냐" "당진제철소는 완공시켜야 하지 않느냐"고 했다. 그래서 채권은행들은 또 한보철강이 발행한 수백억원대의 어음을 지난18일 사실상 부도처리를 해놓고도 5일동안 이를 금융결제원에 신고하지 않은채 쉬쉬해 왔다. 다시말해 채권은행들은 자금지원여부에 대한 상부의 지시만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무리한 자금지원도 그렇지만 전격적으로 자금줄을 끊어버린 것에 대해서도정치적인 외압이 있었는지 여부를 가려야할 것 같다.[[[ 시나리오 있나 ]]] 한보철강의 부도사실이 공식확인된 것은 23일 오후5시30분이었다. 청와대가 출입기자들에게 한보부도 방침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부도가 결정되기전 제반상황을 감안해볼때 관련정보는 상당히 유출됐음을 알수 있다. 4개은행장들이 세시간의 마라톤회의끝에 23일오후 7시35분 발표한 기자회견문은 이미 5시에 작성돼 있었으며 일부에선 이 자료가 회람되기도 했다는 것이다. 주식시장에서 한보철강 주식의 거래패턴이 이상징후를 보인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한보철강 주식은 이날 상한가로 시작해 하한가로 갔다가 전일보다 3백70원하락한채 마감됐다. 거래량도 22일 19만주에서 1백64만2천주로 폭증, 이날의 사태를 먼저 알고있었다는듯 움직였다. 또 22일 오후4시에 진행되던 은행장회의가 돌연 중단됐던 점, 부도를 유예 시켜 오던 채권은행단의 입장이 22일 저녁부터 강경으로 선회한 점등도 아직풀리지 않은 부분이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1월 28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