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시단] '11월에게' .. 한영옥

없어져 주겠다고 자꾸 으름장 놓지 말아라 없어져 주겠다고 벼르지 않아도 날마다 마음은 줄어 가는 것 아니냐 새잎 돋을 때의 싸한 황홀 이제는 졸아붙어 줄기마다 쭈글쭈글 매달려 있지 않느냐 이렇게 될 줄 알았지만 그래, 결국 이렇게 되고 만 것 아니냐 그러니 풋내 나는 으름장은 잠시 거두고 오늘은 잘 가라앉은 시간을 빌려 다오 담쟁이덩굴 남은 뼈대를 거두어 주며 우리 한 겹 옷을 서로 입혀 드리자 추운 빗물 으스스 스며들지 못하게시리 꼼꼼히 지은 따뜻한 한 겹 옷. 시집 "안개 편지"에서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3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