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보 부도 파문] '제도부실'이 '기업부실' 키웠다..문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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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보철강 부도사태의 전말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제도부실"이 "기업부실"을키웠다는 점도 확인되고 있다. 차입위주의 경영을 견제할 장치가 없는데다 여신관리 대출심사 신용평가 감리 관련기관감독등 관련제도가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부실덩어리라는 점이다. 한보가 아무리 엉터리로 계획을 세우고 돈을 썼더라도 일련의 제도들이 충실했다면 상황은 일찌감치 감지됐고 파국은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다. 결국 제2,제3의 한보사태를 막기위해선 바로 이같은 제도적 맹점부터 우선적으로 보완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차입경영 방치 ]]] 정부는 이번 한보철강 부도사태를 계기로 고질적인 차입의존 경영행태 억제대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할 시기가 임박했다는 판단을 내리고 있다. 자본금 9백억원의 기업이 5조원을 빌려다 쓸수 있게 돼있는 체제로는 향후에도 이번과 같은 사태가 재발할수 밖에 없다는 인식에서다. 남의 돈을 무한정 쓰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뜻이다. 빚으로 공장을 짓고 운영자금까지 빚으로 버티며 경기좋아질때 "한몫" 잡아상황을 타개하겠다는 발상을 아예 못하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기업의 부채비율이 경쟁국의 동종업체에 비해 평균 2~3배에 이르고 그로인한 금융비용부담이 경쟁력 강화에 걸림돌이 된다는건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따라 재정경제원은 지난해말 이미 발표된 금융연구원의 "기업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금융정책방향" 자료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금융연구원은 소유분산정도와 재무구조 우량여부로 나뉘어 있는 제도를 "재무구조 우량기업집단"으로 단순화하며 기업집단의 자기자본비율을 계산할때 계열사 출자분을 제외한 "순자기자본비율"을 적용, 계열기업간 출자를 간접적으로 제한하는 방안등을 제시한바 있다. 재경원은 이같은 시안추진에 따른 정책적인 효과와 부작용을 검토중이다. 이와함께 기업신용평가표 재무항목중 자기자본비율배점을 현행 10점에서 대폭 상향조정, 빚이 많은 기업은 대출에 불이익을 주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재경원은 앞으로 금융자율화가 더 진전되면 차입경영 견제가 더욱 어려워질수 있다고 보고 차제에 효과적인 억제책을 마련키로 해놓고 있다.[[[ 무한정 대출 ]]] 정부는 은행들이 동일인여신한도등의 건전성규제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신탁계정을 활용하고 있는 사실이 한보사태를 통해 드러났다. 고유계정에서는 동일인 대출한도와 거액여신한도등으로 제한을 받자 한도가없는 신탁대출로 엄청난 자금을 빼간 것이다. 신탁계정은 고객과 은행간의 계약에 의해 자산을 운용하고 손실에 대한 책임도 고객이 지므로 별도의 건전성규제를 하지 않고 있는 점을 악용했다는것이다. 현재 은행계정에는 동일인 기업당 대출은 은행자기자본의 15%까지,지급보증은 30%까지 제한하고 있으며 거액여신총액한도, 10대계열기업군에 대한 여신한도등을 두고 있다. 은행들은 한보철강에 은행계정에서 동일인한도까지 최대한으로 대출해 준뒤한도초과분은 신탁계정에서 대출하는 방법으로 여신한도규제를 피해온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주거래은행인 제일은행의 경우 한보철강에 대해 은행계정의 동일인 대출한도까지 가득 채우고도 신탁계정에서 1천7백억원가량을 대출했다. 이같은 편법이 부실을 더욱 확대시킨게 확실한 만큼 재경원은 신탁에도 동일인 대출한도를 설정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 엉성한 심사 ]]] 한보철강의 부도는 은행여신심사체계및 사후관리의 허술함을 그대로 노출시켰다. 대부분의 은행들은 지점장 담당임원 전무 은행장별로 여신전결한도를 정해놓고 있다. 건당 여신금액이 30억원이 넘으면 은행장 상부기구인 상임이사회에 회부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형식적이다. 상임이사회의장이 은행장이어서 대부분의 여신이 은행장의 뜻에 따라 좌우된다. 결국 모든 여신승인권은 은행장이 가진 셈이다. 은행들의 여신심사가 서류위주로 이뤄지고 사후관리가 허술한 것도 문제로지적된다. 은행들은 담당심사역을 두고 여신승인여부를 심사한다. 그러나 심사역들이 현장을 방문,사업성과 공사의 진척도를 따지는건 드물다. 그저 기업에서 가져오는 서류만 보고 심사를 끝낸다. 또 일단 여신을 승인하면 사후관리는 거의 하지 않는다. 한보철강의 실공사비가 금융권여신 5조원보다 적은 4조원가량만 소요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한보철강부도를 계기로 여신전결권하부위양을 포함한 여신체계개편,현장위주의 여신심사및 사후관리철저등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 구멍뚫린 감독 ]]] 재정경제원과 은행감독원등 감독기관의 감독시스템에도 허점이 있는 것으로지적되고 있다. 부도가 난 한보철강은 리스사들로부터 1조원가량의 자금을 빌려 썼으며 이 가운데 중복리스 공리스등 편법이 동원돼 시설재구입자금이 아닌 운전자금으로 사용된 부분이 꽤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재경원 감사관실이 지난 93년 경인지역리스사를 감사하고 95년 지방리스사들을 감사하는 과정에서는 아무런 문제점도 지적되지 않았다. 또 정부가 1백%출자한 국책금융기관인 산업은행과 산업리스가 한보철강에 대해 1조원이상(산업은행 순여신 8천8백98억원)의 대출과 지급보증을 했는데도 감사원과의 중복감사를 피한다는 이유로 한차례도 감사를 실시하지않았다. 할부금융사들의 경우는 설립된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정태수총회장등 한보측 대주주들에게 불법대출을 한 한보신용금고는 한보측에 인수된지 얼마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각각 재경원의 감독을 피할수 있었다. 은행감독원도 작년말 한보상호신용금고의 불법대출을 적발하고도 처리를 소홀히 했다. 감봉등으로 관련 임직원을 징계조치하긴 했으나 고발을 하지 않아 사태악화가 지속되고 말았다. 물론 규정만을 보면 고발을 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불법및 위규대출을 경징계하는 "관습"이 체질화된것 아니냐는 지적이 많다. [[[ 무책임한 평가 ]]] 신용질서를 떠받치고 있는 하나의 축이 회계감사라면 신용평가사들은 회사채 어음등에 대한 평가를 통해 신용흐름의 중요한 또하나의 고리를 형성하고 있다. 그러나 한보 부도전후를 보면 한마디로 평가작업이 존재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를 일으킬 만큼 부실 그 자체였다. 예를들어 3대 신용평가사의 하나인 한국기업평가사는 한보가 부도나기 하루전인 지난달 22일 한보철강에 대한 평가를 우량기업에 해당하는 "A-"로판정했으나 바로 다음날 부도가 나는 바람에 부랴부랴 취소 결정을 내리는 해프닝을 연출했다. 그것도 종전에는 B-였던 것이 새해들어 한단계 상향조정된 것이었다. 한국신용평가사나 한국기업평가사 역시 현실과 동떨어진 판정을 내리기는 마찬가지였다. 이들 두 회사는 한보가 이미 부도과정에 들어간 지난달 10일 회사채 등급사정을 실시했는데 모두 무보증회사채를 발행할수 있는 등급인 BBB-로매겨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금융계에서는 금융기관들의 대출을 비롯 회사채나 어음 발행등이 모두 신용평가사들의 판정에 기초해 이루어지는 점을 감안, 이처럼 턱없이 부실한신용평가사들의 행태를 차제에 뜯어 고쳐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감리 겉핥기 ]]] 한보철강 부도사건은 현행 회계제도에도 허점이 있음을 드러냈다. 우선 한보철강은 지난 89년이후 6년간 한번도 감리를 받지 않았다. 부채가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감사인이 적정하게 감사했는지 증권감독원은 제대로 조사하지 않았다. 또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부도설이 수시로 나돌았으나 특별한 정보를 입수했을때 실시하는 특별감리도 하지 않았다. 증감원은 이에대해 감리대상법인을 무작위 추첨으로 선정하고 있기 때문에빚어진 현상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즉 상장사의 10% 정도인 70여개사를 무작위로 추첨해서 감리하고 있는데 공교롭게 한보철강이 지난 89년이후 6년간 계속 선정되지 않았다는 설명이다. 증권감독원이 뒤늦게 부채가 많거나 관계회사 대여금이 많은 회사를 우선 감리대상으로 삼기로 한것도 그래서다. 한보철강 부도는 또 현행 연결재무제표제도에도 허점이 있음을 드러냈다. 22개 계열사를 갖고있는 재계 14위의 그룹이지만 정태수총회장이 직접 계열사에 출자하고 있다는 이유로 연결재무제표를 작성하지 않았다. 따라서 한보와 같이 개인 대주주에 의해 지배되고 있는 그룹의 재무상태를 파악하기 위해 집단재무제표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지적이 다시 나오고있다. (한국경제신문 1997년 2월 4일자).